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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by 피넛버터

나이 들어 재취업하는 경우 여러 가지가 걱정된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아이들의 생활양식에 생기는 변화가 제일 염려스러웠고 그다음으로는 나의 적응에 대한 걱정이었다. IT회사에 오래 몸담았다고는 하지만 그 업계를 떠난 게 몇 년이나 지난 지금이다. 게다가 내가 새롭게 입사한 곳은 회사 대표도 부서장도 나보다 젊은 분들이다.


요즘의 20대-30대들을 MZ라고 부른다지.

나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공부라도 좀 하고 입사해야 하나 싶었다. 주변 지인 중 30대 초반의 아이 엄마가 있어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내가 어떤 회사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 대부분 젊은 사람들 투성이야. 말이 안 통하면 어쩌지?"

그러자 그 아이 엄마는 평소 내 대화를 상기하더니, 일단 난감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어쩔?"이라는 말은 쓰지 말란다. 그건 요즘 애들이 쓰지 않는단다.


아 그렇구나.

이게 뭐라고 ㅋ 일단 이거 하나라도 배우니 안심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내 주변에 MZ 나이에 근접한 사람은 이 사람뿐이라 그냥 믿어야 한다.


어차피 대화도 안 통할 텐데 나는 그냥 따밥이나 해야겠다.

아 혹시 '따밥'이라는 말도 모르려나?

서양 사람들의 회사 점심시간처럼 요즘 한국 회사들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좀 많아졌으려나? 라떼는 누가 약속이 있지 않고서는 따밥이란 스스로 왕따를 자처해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내 성향상 매일 점심마다 다수(주로 남자)와 섞여 그들의 속도에 맞춰 급하게 밥 먹는 게 늘 부담스러웠던 지난 회사 생활이 떠오른다. MZ들이 가득한 이 회사는 혹시 따밥에 대해 긍정적인 문화가 있을지 살짝 기대도 해본다.


그렇게 MZ들에 대한 여러 환상과 염려를 품고 근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몇 달이 지났다. 결론은?


지금 돌이켜보면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들도 그저 나와 같은 한국말을 하는 평범한 젊은이들일뿐이었다. 내가 모르는 외국어를 그들이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와 노인처럼 60년 이상의 문화적 갭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주말마다 방문하는 우리 동네 커피숍 직원과 사장님과 같은 보통의 젊은이들이다. 괜히 MZ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뭔가 나와 이질적일 거라는 선인겹을 가졌다.


내가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딱 한번뿐이었다.


결혼 시기가 비슷해서 신혼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여성.

"포르투갈 가세요? 어, 나도인데. OO님은 거기가 원픽이었어요?"


으음? 원픽이 뭐지.


한 번에 골랐냐는 말인가?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말인가?

한 명이 골랐냐는 말인가?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나와 비슷한 추측만 한다.

ChatGPT에 물어보니, "최애, 가장 좋아하는"이라는 뜻이란다.

남편과 나, 둘 다 틀렸다.


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회사 생활은 언어(영어의 유창성이나 MZ언어의 이해도 등)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말은 기본적으로 곱게 해야 한다는 글로벌 공통 룰만 갖춘다면, 결국 중요한 건 회사일에 대한 성실함과 사람들과의 협업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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