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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Slack)과 리눅스(Linux)는 좀 아시죠?

by 피넛버터


Slalck, ChatGPT, Linux, Confluence, Jira, Git


이 중 들어본 적 있는 단어가 있는가? 그러면 당신은 IT회사와 어떻게든 연이 있었던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나에게도 저 중 대부분은 아주 익숙하지만 일부는 매우 생소하다.


재취업을 하기 전에는 모든 게 두렵다. 내가 IT회사를 다니지 않았던 지난 몇 년간 협업 툴들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그리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툴들을 어떻게 쓸지…


마흔 중반의 늦은 나이에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스타트업 IT회사에 입사한 자의 눈에 비친 리눅스와 슬랙은 이렇다.


리눅스 (Linux)

나는 리눅스를 활용해서 일해본 적이 없다. 10여 년 전쯤 한 사설 교육 기관에서 리눅스를 배워본 적은 있다. 왜 이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이직을 준비하면서 채용 공고를 보다 보니 뭔가 써먹을 데가 많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 학원은 프로젝트성 결과물을 내야 하거나 어떤 테스트가 있는 곳이 아니었고 강사가 혼자 주도하는 강의식 수업이었다. 이 과정을 3개월 정도 듣고 나서 내 머리에 남는 건 ‘센토스(CentOS)’라는 이름뿐이었다. 그 외에 어떤 명령어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취업한 회사가 만들어내는 제품은 기본적으로 리눅스에서 동작하는 제품이다. 그렇기에 리눅스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개발자도 아니고 엔지니어도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입사했지만, 제품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즉 간단하게라도 리눅스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처음 입사하고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다. 회사 컨플루언스 페이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만 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한 직원이 나에게 회사 제품에 대한 소개를 해준다고 한다. 이 분은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해 나를 제외하고 팀 내 가장 최근에 입사한 분이다. 동시에 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분이다 (올해 서른이라 하신다. 부럽다).


회사 제품을 20분 정도 설명해주고 나더니, 이제 제품을 설치하는 방법을 간단히 보여주겠다고 한다. 칠흑같이 검은 창에 (이걸 CLI - Command Line Interface 환경이라고 한다) 리눅스의 명령어들을 현란하게 타타타 치더니, 10분 정도 뒤에 “간단하죠?”라고 한다.


아니라고 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틀린 말이라

“그런가요? ㅎㅎ”라고 말하고는 까만 화면 위의 하얀 텍스트들을 그저 지그시 바라봤다.


내 반응이 뭔가 불안해 보였는지, 그 젊은 청년은 “리눅스는 할 줄 아시나요?”라고 묻는다.

“음, 10여 년 전 배우긴 했는데, 전혀 기억도 안 나고 그 뒤로 회사에서 사용해 본 적은 없어요”라고 답해보았다.

본인도 윈도우만 다루다가 여기 와서 리눅스는 처음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금방 익숙해지실 거라고 한다. 많은 위로가 되는 말이다. 친절한 젊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뜸 “이제 한 번 직접 설치해보시겠어요? 라고 한다.

테스트 가능한 VM 서버 주소를 슬랙으로 하나 던져 줄테니, 여기로 일단 접속해 있으면 제품 다운로드하는 경로는 다시 주겠다고 한다.


음, VM이 뭐였더라.. 가상 머신의 약자이긴 한데 그거 뭐 할 때 쓰는 거더라..

서버로 원격 접속하는 방법이 뭐더라…

기억을 짜내보자… 아…

아까 저 직원이 어떻게 했더라..

그 10년 전에 그 강사분이 secure 하게 원격으로 서버에 붙는 방식이 어쩌고 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나 혼자였다면 천천히 구글링이라도 해보며 이리저리 해봤을 텐데, 바로 앞에서 당장 해보라고 하니 손도 머리도 멈췄다. 그냥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요’ 모드로 가기로 했다.


“접속하려면 뭐라고 처음에 치면 되나요?”


내 앞의 그 직원은 잠시 몇 초간 말이 없다. '엇, 이 아주머니 너무 아무것도 모르시는데?!라고 생각했을 거라 추측해 본다.


그 직원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말투로 이런저런 리눅스 명령어를 알려준다. 그의 도움으로 여차 저차 겨우 서버에 접속해서 제품을 설치해 보는 걸로 교육은 일단 끝났다.


그 후로도 이 리눅스라는 녀석은 내 업무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컴퓨터 내 디렉터리 간 이동하는 명령어조차 몰라서 경로 이동에만도 한참 걸리고, 분명 전달해 준 문서에 있는 그대로 명령어를 입력했는데도 왜 내 컴퓨터에서만 오류 메시지가 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마다 옆 동료에게 묻기도 미안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나 빼고는 전부다 왜 이리들 잘하는지. 왜 나이 들어서 이 나이에 이런 난해한 걸 배워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 그때 10년 전에 배우고 나서 좀 이리저리 써먹어 볼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리눅스 왕초보 딱지는 뗀 거 같다. 지금은 그냥 초보랄까)


슬랙 (Slack)

이것도 예전에 한번 써본 적 있기는 하다만,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조직 내에서 써본 적은 없다. 하지만 리눅스에 비하면야 아주 아주 쉬운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다만 내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슬랙에 손을 대기 어려웠던 부분은 다름 아닌 이모티콘이다. 사람들이 문장 중간중간 또는 끝에 함께 사용하는 아주 다양한 이모티콘들.


젊은 친구들이 슬랙에서 하는 대화를 지켜보니, 이모티콘을 이렇게 수시로 사용하더라.


감사하다고 할 때는 항상 엎드려 절하는 이모티콘이나 두 손을 모으는 이모티콘을 덧붙인다.

뭔가 예측과 다른 대답이 나온 대화에서는 안개에 휩싸여있거나 당황한 얼굴의 이모티콘을 덧붙인다.

누군가 휴가 날짜를 공유하면, 잘 가라며 두 손을 흔드는 만화 캐릭터의 이모티콘을 덧붙인다.

팀 내 다른 직원에게 질문을 할 때는, 안경을 쓰고 고개를 갸웃하는 캐릭터의 이모티콘을 덧붙인다.

스크린샷 2025-06-17 231449.png

흠, 이건 정말 세대 차이라 할 만하다.


이미 언어로 충분히 의도와 상황을 설명한 거 같은데, 이렇게 이미지로 자신의 심리를 더욱 세밀하게 묘사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대화 방식이 낯설어서, 입사하고 나서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입사한 지 얼마 안돼서 아는 게 없기에 질문할 것도 없고, 나한테 아무도 뭘 잘 묻지 않으니 대답할 일도 없었다) 슬랙 내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말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도 남들처럼 이모티콘을 하나 골라 슬쩍 붙여보았다. 이런 것쯤은 마흔 넘은 나도 익숙하다는 듯 말이다.


어랏? 하다 보니 좀 재미있다.

어떤 신박한 이모티콘을 붙일까 고민하는 깨알 같은 재미랄까?

뭔가 대화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랄까?


입사한 지 이미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오긴 했다(이모티콘, 사실 좀 귀찮다. 늙은 나에게는). 다만, 뭔가 정중한 부탁을 해야 하거나 정말 수고로운 일을 요청해야 할 때 이런 이모티콘은 참으로 요긴하게 내 마음을 전달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팀이 아니라서 격식(?)을 차려야 하는 대상에게만 이모티콘을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툴은 툴일 뿐이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크레이티브함을 요구하지도, 복잡한 로직을 해결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처음 보는 도구와 툴이라고? 아무 걱정말자. 시간이 해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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