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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은걸 숨기려 애써봤자 의미없다

by 피넛버터



우리 부서 사람들은 대부분이 30대이고, 나와 한 두명만 40대이다. 그리고 그 40대 중에서도 내가 최고령자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나이가 많을까 하고 매일 생각한다.


나는 타인의 표정과 태도에 예민한 편이다.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 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피곤한 짓이며 내 에너지와 시간을 갉아먹는지 깨달은 뒤로부터는 '남이 보는 나' 말고 '내가 보는 남'에 더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고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회사에 오고 나서는 유독 다시 예전의 나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자꾸 관심이 간다. 신경이 쓰인다. 내가 오늘 입는 옷, 신발, 머리 스타일, 말투, 사용하는 단어들 죄다 혹시 나이 들어 보이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피곤하다.

척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나는 그냥 나다.

내가 10년 젊어 보이게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서 염색을 한다고 해서 내가 다시 서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다.


얼마 전 화면에 기재된, 서로 다른 두 서버의 주소를 지정하는 IP address와 port 값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두 서버의 포트 번호가 9001로 똑같은 거다. 이상하다. 두 서버의 포트번호가 같을 리가 있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동료에게 SOS를 쳤다.


"아무개님, XX 제품에서 두 서버의 주소를 각각 지정하는데, IP와 Port 번호가 같아요. 이게 말이 돼요?"

그러자 잠시 후 아무개님 왈,

"피넛버터님, A서버는 9001 포트라고 되어 있고 B서버는 9100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헙.

다시 살펴보니... 그러하다.

이상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둘 다 9100이었다.


"ㅠㅠ 제가 벌써 노안이 오려나 봐요 흑"

하고 대답하며 무안함을 애써 감춰보았다.


그냥 나이가 많아서 그러니 이해해 달라는 신호였다.

이럴 때 그냥 드러내기로 했다.

드러내면 편하다.


남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면 삶이 피곤하다.

타인에게 친절한 것과 타인에게 잘 보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내 시선의 방향을 나에게 두면 매사 노심초사하게 된다. 내 시선의 방향을 타인에게 두고 타인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내 마음도 편안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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