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IT회사의 우리 부서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도 많고, 제일 아는 것도 없다.
마흔 중반의 늦은 나이에 입사했기에, 회사 제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하다. 그래서 30대 동료들에게 매일 허리를 굽혀가며 배우는 중이다. (물론 실제로 굽히는 건 아니고 Slack의 이모티콘을 통해서지만 말이다.)
요즘 나는 젊은 동료들과 함께 지내면서 스스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게 몇 가지 있다. 오늘은 그중 한 가지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바로 '꼰대스러움'이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 전,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직원이 6명 남짓한 아주 작은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곳은 전반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고, 당시 마흔 초반이던 나보다 어린 사람은 한두 명 정도였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한 분이 있었다. 서울의 주요 지점에서 은행 지점장을 역임하고 은퇴한 분이었다.
윙윙윙
전화 진동이 울린다.
"어, 박사장 웬일이야 이렇게 갑자기. 내가 보고 싶었어?"
"어 김 부장, 잘 지내?"
"정상무, 어디야?"
그가 전화를 받는 날도 있지만, 그가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뜬금없이 전화를 거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다 같이 일하는 사무실 한가운데서 아주 큰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별 영양가 있는 전화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사무실을 나가서 받지 않았을까) 안부를 묻고 조만간 밥이나 먹자는 결론이 대부분이다.
그 통화 상대들은 아마도 그가 지점장으로 일하던 시절 맺은 인연들이었던 것 같다
그분에 대한 내 기억엔 두 가지 특징이 남아 있다.
1. 늘 과거 이야기를 한다.
은행 다니던 시절 만난 부자 고객 이야기, 자신의 와이프를 당시 지점장이 소개해줬던 일화 등 소재도 다양했다. 현재나 미래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잘 없다. 자녀가 있다는 건 들었지만, 자랑하거나 이야기하진 않았다. 자녀가 본인의 인생 업적이라 말하기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2. 모든 대화 주제에 대해 자신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
경제, 정치, 교육, IT 등 어떤 화제를 꺼내도 본인의 견해가 분명했고 말도 많았다. 함께 밥을 먹거나 시간을 보낼 땐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 대화의 끝은 종종 씁쓸했다.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그분을 자주 떠올린다. 그를 거울삼아 스스로를 비춰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의 대부분 동료들은 30대다. 결혼을 안 했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가 없거나 한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나는 12살, 7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육아 경험의 차이가 크다. 그리고 할 말이 아주 많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자식들 키우는 이야기를 하라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육아 이야기, 결혼 생활 이야기 등 익숙한 주제가 나오면 나는 조심하게 된다. 내 경험을 너무 길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직 어린 아기를 키우는 그들의 고민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고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본다.
내 경험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정말 '꼰대'가 될 것 같아서,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누가 육아의 고충을 토로해도 한 두 마디 거들거나 그냥 맞장구를 쳐줄 뿐이다.
나는 육아 전문가도 아니고, 아이 셋을 대학까지 보낸 엄마도 아니다. 아직 초등학생 둘을 키우는, 여전히 서툰 엄마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란, 단순히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꼰대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런 건 소용없어…”
나는 그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중년의 신입사원은 조용히 일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