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생태학자를 추억하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질적연구를 배우던 한 시절
질적연구를 만나다
유교수에게 수업을 들었던 건 박사과정 2학기 무렵이었다.
전공 특성상 통계 기반의 양적 연구가 주를 이루던 수업들 속에서, 그는 연구자 자신이 연구도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하면서 수업의 90% 이상을 연구방법론으로써의 질적연구와, 그런 연구자가 되기 위한 필수 자질인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기업교육1,2> 식으로 명명된 그의 강의는 "들을 때는 힘들지만 끝나면 보람이 있다"는 후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들은 "일주일 내내 지속되는 글쓰기의 압박"이란 반대급부를 처절히 치른 뒤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세상과 내 일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 혹은 삐딱한 눈초리로 살아가는 중이었지만, 어쩌다 레이더망에 걸린 관심 사안들에 대한 인상 비평 수준의 생각을 알맹이가 있는 글로 풀어낸다는 건 별개였다.
매주마다 제출하는 에세이 형식의 주간 과제는 없는 집에 돌아오는 제사처럼 부담스러웠고, 마감의 문턱을 넘나드는 긴장감으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더 무서운 건 그런 내 노력과 시간, 얄팍한 문제의식을 밀가루 계량하듯 정확히 알아챈 피드백이었다.
"so what??" 처럼 근본을 흔드는 물음표들로 채워진 좌절의 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15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생각나는 한 문장이 있다.
"A++. 좋은 문제의식입니다. 계속 고민해서 paper로 발전시켜가기 바랍니다. "
Final paper 였다.
<유혹하는 글쓰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만난 시절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전달되었던 교재가 기억난다.
주교재격인 질적연구 개론서는 한 두권에 불과했고 사례집 격의 연구논문 모음이나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처럼은 글쓰기 자체에 관한 책이 훨씬 많았다.
그런 책들을 읽는 순간은 매우 즐거웠다. 세계적인 작가들도 나와 비슷한 괴로움을 겪으며 글을 썼구나 싶은 동지애는 신이 났고, 내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지 재능의 문제가 아님을 아프게 절감하는 일은 괴로웠다. 번쩍이는 재능들도 절박하고 처절했던 글쓰기를, 나는 턱없이 부족한 재능임에도 오래오래 게을렀다. 40이 넘어 등단했다는 박완서 작가를 핑게 삼으며, 그 나이가 되면 뭐라도 하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 속에 안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부끄럽지만 않은 것은 그 시절 접했던 글쓰기 책들에게서 좋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세상사처럼 글쓰기계에서도 유효한 보편원리는 그 일에 정직하게 바친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란 사실이다.
껌뻑이는 커서와의 숨 막히는 대결
막상 글을 쓰려 모니터 앞에 앉으면 커서와의 대결이 시작된다.
작고 시꺼먼 커서란 녀석은 '넌 쓸 수 있다', '아니다 넌 쓸 수 없다'란 주문을 번갈아 외웠다. 뭐가 되었든 몇 글자가 되었든 한 자라도 적을 수 있으면 주문은 멈춘다. 잠시라도 타자가 쉬게 되면 예의 그 주문이 다시 시작된다.
제법 팽팽했던 대결 위로 꽤 많은 낮과 밤이 지났다. 된 것 같으면서도 안 된 문장 속에 허우적거리다 보면 익은 생각과 익지 않은 생각이 보였고, 익지 않은 생각을 다듬다 그 문장들이 비어있는 여백을 채우며 익어가는 순간은 경이로웠다. 그렇게 바쳐진 나날들 속에 필력이란 것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훈훈한 깨달음의 순간은 접어두고, 수업이 진행되던 한 학기 동안 나의 문제의식만이 가장 고유하고 가치롭고 의미있으리란 자신만만함은 간단히 외면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는 반문들이 따라붙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피드백 앞에 나는 속수무책이였다.
질적연구가 그 자체만으로 온전히 연구방법론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구자의 모든 주관이 해명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만난 질적연구 언저리를 지금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밋밋하고 평평하게 다가오지 않던 매번의 수업 덕분으로 나는 여전히 글과 문장에 예민한 촉수로 살아갈 있고 그런 사실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