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미경 Aug 26. 2018

3. 29살, 여전히 취준생입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23살(빠른 입니다), 대학교를 칼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구직 활동을 했었죠. 그때 한 2~30곳에 지원했던 거 같아요. 근데 다 떨어졌지 뭐예요. 근데, 아직은 때가 아닌 건지 공부를 더 하라는 건지 딱 한 곳에 지원했던 대학원에 합격하면서 취준생이라는 시간을 미룰 수 있게 됐어요.


대학원. 그때는 공부밖에 할 줄 몰랐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나 봐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지도 모르겠고, 사회에 나가는 게 무서웠습니다. 2년 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나면 25살이라는 나이에 석사 학위를 가지고 회사에 당당히 입사할 줄 알았죠.


하지만 세상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대학원 수업은 너무나 힘들었고 휴학하고 자퇴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중간에 다시 취업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휴학 1년 동안 저는 여전히 백수였어요. 너무 힘들었죠. "왜 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무 곳에서도 나를 원하지 않을까"하는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스펙업을 위해 이것저것 해보려 했지만, 돈도 벌어야 했고 학자금 상환일이 돌아왔고 결국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겨우겨우 26살에 대학원을 수료하고, 학위 준비를 하면서 여기저기 지원서를 또 넣었죠. 정말 지긋지긋했어요. 자소서 항목은 왜 이렇게 많고, 질문은 왜 이리 많은지, 또 글자 수 제한은 왜 이리 많을까요? 그렇게 하루에 2~3곳씩 지원서를 넣었지만 시간만 가고, 무력감은 심해지고 백수 생활은 길어졌죠. 포기했습니다 알바와 계약직으로 마음을 돌렸어요. 그렇게 잠시 또 취준생을 유예할 수 있는 기간이 생겼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 종합시험공부, 토익 공부를 멈출 수 없었어요. 봉사활동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도 제게는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겨우겨우 얻은 정규직 일자리는 수습기간 동안 '경영방침의 변화'로 저를 케어해 줄 사람이 없다며 첫 해고를 당했습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뭐 다단계 같은 곳이었고요. 세 번째로 간 회사는 저를 괴롭히는 3개월 선배 때문에 크게 싸우고 나왔습니다. 네 번째로 간 정말 소규모 회사는 자신의 딸을 인턴으로 데려와 놓고 가장 힘든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저를 해고시켰습니다.


"나 이제 행복할 때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자소서며 이력서며 쓰기도 싫어졌습니다. 겨우 실업급여를 받으며 지냈지만 원형탈모와 맞바꾼 저의 첫 책은 나온지도 모른 채 묻혔고 회의감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어요. 하지만,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방세와 학자금, 생활비 때문에 다시 취업해야 할 상황이 왔습니다.


취준생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이렇죠.

"노오오오력을 해. 우리 때는 말이야~" 아니면
"자네가 그 연봉, 그 회사에 어울릴 만한 능력을 가졌나?"라고 하죠.


그런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학점은 저보다 높나요? 당신의 토익 성적은 몇 점입니까? 봉사활동 경험은 있나요? 아르바이트나 회사 오기 전 사회 경험은요? 지금 저와 영어로 대화 가능합니까?"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온 저는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 스트레스를 다시 받아야 한다니 싫었어요. 그냥 행복하고 싶었어요. 먹고살 수 있는 만큼의 급여를 주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자기계발을 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조금 아끼면 여행도 다닐 수 있는 그런 회사를 원한 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인사담당자들이 싫어하는 필요 없는 고학력에 토익 성적은 만료됐죠. 대기업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시 돈 벌기 위해 들어가려고 하는 회사의 지원동기란에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길가다 저처럼 면접복장을 한 젊은이들을 보면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나도 당신과 같은 길을 다녀오는 중인데, 우리 언젠가 잘 될 것이라고 믿어보자고요. 우리 세대의 실업률, 취준생의 고통은 같은 세대 사람들만이 알 수 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이신가요? 걱정 마세요. 군대도 안 다녀온 29살 여자 취준생이 여기 있습니다. 많이 힘들죠? 눈치 보이고, 돈이 없어 사람 만나는 일 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우리 세대들. 그런 우리를 차갑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들.

면접복장의 정석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는 욕심이 많은 게 아닙니다. 능력에 비해 턱없이 높은 곳에 지원해 떨어지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만큼 바보는 아니니까요. 오늘도 면접 일정을 기다리며 더운 여름날 스타킹에 검정 구두와 정장을 입고 취업을 위해 면접장으로 향하는 당신의 발걸음 옆에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학창 시절 더 많이 놀 걸 그랬나 봅니다.


해야 할 일만 많은 취준생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으면 좋겠어요. 밤에 편히 잠 못 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는 우리나라의 취준생들에게 일 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무작정 무상지원으로 돈을 주는 게 아닌 일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을 받는 기회를 줬으면 해요.  29살의 취준생인 저는 다시 신입부터 시작하여 다음 주부터 출근한답니다.


면접을 위한 취준생 전용 표정


또 언젠가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다시는 취준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죠.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시죠?
매거진의 이전글 2. 소심한 건 죄가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