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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Nov 02. 2020

어디서부터 내가 이상해진 걸까?


어디서부터 내가 이상해진 걸까? 

인터넷에 나의 이상 식욕에 대해 검색해서 ‘식이장애라는 말을  알게  다음  생각이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마음에 드리운 식이장애란 그림자는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 시작된 걸까? 그걸 알아야  엉킨 실타래를   있을  같았다.  앞의 모든 음식을 먹어 없애버려야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있는 나의 이상 식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폭식경험은 남들  1년에 한두 번씩 경험하는 평범한 과식 수준의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가족들과 외식을 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혼자 져서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배가 출출해서 온갖 과자며 초콜릿을 방에서 까먹었다.  에피소드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초콜릿 과자를 한참 까먹다가 ‘ 이제 배가 부르다라고 느꼈지만, 손을 멈출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검은 봉지 속에 담긴 남은 과자는 다음에 먹어야겠다 싶어서 넣어 놨다가, 잠시  결국 봉지를 다시 꺼내서 과자를 마자 먹기 시작했다.

 다른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 인생 최초로 다이어트를  직후의 기억이다. 당시 유행하던 xx라이프 다이어트를 했다. 아침저녁 식사 대신 프로틴 셰이크  잔씩만 먹고 하루에 물을 5리터씩 마시는 다이어트였다.  6 열심히 하고는 ‘입이 터져서마트에서 팝콘에 감자칩에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쟁반 하나에  가득 올려놓고 한꺼번에  먹었다.

그러나  정도의 폭식, 혹은 단순한 과식 경험을 가지고 식이장애라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원래 이렇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손꼽히는  번을 제외하고는 1인분 정도를 배부를 정도로 먹는 평범한 식욕의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1.2인분 정도 먹고 ‘ 너무 배부르다 했고,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면 0.8인분 정도 먹고 그다음 식사 전에 적당히 간식도 먹는, 그런 식이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직관적인 식습관을 가진 과거의 내가 몹시 부럽다.

식습관과 관련해서 처음 이상을 느낀 것은 22 때로 기억한다. 이때 나는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밀라노에 있었다. 이탈리아 하면 역시 피자, 파스타, 젤라토다. 원래도 좋아하던 피자, 파스타에 디저트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먹을  있었는데, 처음으로 자취를 하면서 옆에서 영양을 챙기고 자제해  사람도 없었다. 한국 가면  먹는 것들이니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끼니를 열심히 먹었다.

, 밀라노에는 8시부터    값을 내면 안주류를 뷔페 식으로 먹을  있는 아페리티보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학교 친구들과 거의 매일 저녁 아페리티보를 즐겼다. 게다가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굉장한 대식가였다. 그와 식사를 하면 나는 본래의  양도 잊고  앞의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많이 먹게 되었다. 마트에 가면 생전 처음 보는 비스킷과 케이크, 초콜릿에 너무 행복하고 설렜다. 오늘은 어떤 아이를 살까, 고민하면서 마트에서  시간 가는 것도 몰랐다. 그것들을  사서 방에다 쌓아놓고 하나만 먹어야지, 하나만  먹어야지, 하다가 결국    간식들을   끝장을 냈다.

그렇게 식사는 식사대로 거대하게, 간식은 간식대로 성대하게 먹다 보니 살이 야금야금 쪘다. 몸매 관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마트에 가도 간식류를 사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정도 군것질을 완전히 끊었다. 고작 하루    먹었을 뿐인데   저녁에 갑자기 손에 땀이 나면서 현기증이 났다. 내가 군것질을 끊었지 음식을 아예 끊은 것도 아니었는데! ‘  당장 먹어야 해’라고  뇌가 외치고 있었다.  길로 마트로  떨리는 젖은 손으로 초콜릿을  먹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몸이 이상한데?’

유럽에 있는 동안  번은  인생에서 가장 심하게 장염을 앓았다. 당시 나는 부활절 방학을 맞아 홀로 부다페스트, 비엔나, 프라하를 여행 중이었다. 장염의 시작은 아마 부다페스트에서 먹은 케밥이었을 것이다. 주문한 케밥이 준비되어 나오자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양에 놀랐으나, 자극적인 것이 입맛에  맞아서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그렇게 저녁으로 케밥을 먹고 야경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다. 유럽엔 공중 화장실이 흔치 않다. 곤란한 순간에 길에서  맥도널드가 떠올라서 급히 길을 되돌아가 맥도널드의 화장실을 찾아갔다. 

그 다음날 비엔나로 향하는데  몸이 별로였다. 열도  나는  같았다. 장염이라고는 생각  하고 감기 기운이 있나 싶어서 비엔나에서는   챙겨 먹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숙소 근처에 아이스크림 맛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잔뜩 먹고, 비엔나에서 유명하다는 카페들을 성지 순례하듯이 찾아가서 커피와 케이크들을 먹어줬다. 이때쯤 슬슬 배에 이상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나의 의지와 조절되지 않는 식욕을  정도의 복통과 설사가 꺾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비엔나에서 먹고 싸고를 반복하다가 마지막 여행지인 프라하로 갔다. 몸이 정말 좋지 않았다. 열이 많이 나서 몸살감기가 심해졌다고 생각했다.  배가 아프고 설사를 했는데도 장염을 의심하지 않았나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장염 초보(?)라서 장염에 심하게 걸리면 몸살 증상과 비슷하게 아프다는 것을 몰랐다. 오히려  밖으로 배출이 되면 열이 내린다고 어디서 들어서  싸면 나을  알았다. 그래서 프라하에서도 열심히 먹었다. 몸보신을 하겠다며 굳이 한식당을 찾아가서 짬뽕도 먹고,  아픈 와중에 프라하 과자는 어떨지 궁금해서 마트에서 과자를 잔뜩 사서  먹었다.

결국 장염 초보인 나도 빼도 박도 못하게 ‘이건 장염이야라는 생각이 들도록 초록 변과 함께 지독한 복통을 앓게 되었다. 프라하 약국에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복통 약을 구했다. 석탄 가루 성분의 약이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복통으로 사망할  같다는 생각에 급히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끊어 여행을 일찍 마치고 밀라노로 돌아왔다.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서 택시를 불러 (교환학생으로 있는 동안  택시였다.  정도로 급했다.) 병원으로 갔다. 갔더니 예약제란다. 3시간 후로 예약해놓고 일단 집으로 갔다. 기다리다가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과 처방 (금식) 다행히도 효과가 있어서 3 후에는 다시 배고픔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장염 회복 4일째, 살만해진 나는 이온 음료가 아닌 씹을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졌다. 의사는 ‘white food’ 먹으라고 했다. 감자를 삶아서 먹었다. 하나, , , ,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다. 먹다가 비스킷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나름 화이트 푸드 아니야? 외국에서는 장염 걸리면 크래커랑 토스트 먹기도 한다던데? 혼자 핑계를 대며 비스킷을 입에 넣었다.   정도 먹고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은  같았다. 그래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될  같았다. 그러나 결국    비스킷  봉지 하나를 끝냈다. 그리곤 이렇게 생각했다.
?  먹는   멈추겠지?’

이게 시작이었다.  음식에 대한 집착과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끝을 보기 전에는 멈추지 못하는 나의 식이 장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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