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5달 정도 살면서 내 식욕과 식습관에 이상이 생겼음을 느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한결같이 유지해오던 몸무게에도 변화가 왔다. 모두가 살이 찐다는 고3 시절에도 딱히 살찌지 않은 나였는데 교환학생 5달 만에 4킬로 정도가 붙었다. 그리고 5달 동안 생리를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귀국 후 바로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었다. 피검사를 했는데 갑상선 수치도 좋지 않았다. 내게 내려진 처방은 식습관 개선이었다.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다이어트를 할 참이었는데 대외적으로 식이조절을 할 만한 명분이 생긴 것이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다이어트 방법은 먹는 것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밀가루를 일절 먹지 않고, 음식 종류의 양을 엄청나게 조절했다. 단호박, 두유, 계란, 고구마, 토마토 이외에는 잘 먹지 않았다. 엄마는 이런 날 보고
“그게 사람 식사니? 그게 밥이 되니?”라고 했지만 난 산부인과에서의 처방을 들먹이며 식단을 개선하고 살을 빼야 생리도 하고 갑상선 수치도 정상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내 기준에 ‘건강한’ 음식들만 먹으면서 하루하루 줄어가는 몸무게를 보며 뿌듯해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하루라도 군것질을 하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는데 한국에 오니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가 더 강했는지 군것질에 대한 욕구도 이겨낼 수 있었다. 아니, 군것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들었다. 딱히 뭐가 먹고 싶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음식들은 그저 ‘먹어도 되는 음식’,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먹어도 되는 음식,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줄여야 하는 몸무게 따위의 것들이 그때 내 머릿속에 강하게 심어져서는 아직까지도 나를 쫓아다닌다.
그렇게 여름 내내 다이어트를 해서 9월, 2학기 개강에는 갑상선 수치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생리도 다시 하고, 몸무게도 5년 간 유지해오던 무게로 돌려놓았다. 언뜻 보면 건강해진 것도 같다. 그러나 아마 이때 내 뇌는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 같다. 다이어트를 무식한 방법으로 과하게 한 것이다. 몸무게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다이어트는 공식적으로는 끝이 났고, 나는 여전히 되도록이면 내가 정한 ‘먹어도 되는 음식’을 먹었지만, 친구들과는 외식을 하기도 했다.
하루는 친구와 떡볶이를 먹고 집에 왔다. 떡볶이는 원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오랜만에 먹은 즉석 떡볶이는 매우 맛있었다. 그러나 떡볶이를 먹고 집에 오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먹는 잠깐은 행복했으나 식당을 나온 직후부터 떡볶이를 먹어버린 내가 싫었다. 왜 먹었지. 망했다. 너무 많이 먹었다. 속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집에 왔다. 속이 안 좋은 게 확실했다. 화장실에 가서 음식을 다 토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먹고 토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강하게 들었다.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토한 만큼은 살이 안 찌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위험한 안도감.
그 날 이후로 내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음식을 먹으면 곧바로 속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했고, 물을 아주 많이 마시면 속이 안 좋은 게 확실해졌다. 변기를 보면 거의 곧바로 토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드는 위험한 안도감.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대식가였다. 그녀는 늘 식사를 하다가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잠시 쉬다가 더 열심히 음식을 먹었다. 한 번은 밥을 먹다가 그녀가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손등이 빨개져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내게 자신의 빨간 손등 위의 흉을 보여주며 이것은 치아 자국이라고 했다. 자신은 폭토를 몇 년째 하고 있다고. 초등학생 때까지 비만해서 놀림을 많이 받아서 살을 뺐더니 자신을 돼지라고 놀리던 남자애들이 갑자기 고백을 해와서, 그 이후로 체중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리고 계속 다이어트를 하다가 어느 순간 폭토를 하게 됐다고 했다. 나쁜 걸 알면서도 습관이 돼서 멈출 수 없다고도 했다. 더 많이 게워내기 위해서 가운데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 토를 하게 됐고, 치아가 손등에 닿아서 흉터가 생겼는데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너 같은 애들은 이해 못 해. 원래 말랐던, 원래부터 놀림받지 않던 애들은 이해 못 해.”
그 말을 들을 때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토를 해가면서까지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토를 할 정도면 그냥 그만 먹으면 안 되는 건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왜 토를 해야만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매번 토를 했는지, 다 게워내고 나면 어떤 마음이었는지.
폭토를 하던 때에 난 그녀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빨갛던 손등의 흉터를 많이 생각했다. 난 물을 아주 많이 마시고 토를 했지만, 내가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토를 유도하는 것도 한순간의 일로 보였다. 그녀와 내가 겹쳐 보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이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발 토만은 하지 말자. 먹었으면 아무리 괴롭고 죄책감을 느껴도 내가 책임을 지자. 그 이후로 토는 하지 않았다. 게워내고 싶은 욕구가 들었지만, 그때마다 토만은 하지 말자, 토만은 제발 하지 말자, 계속 내 가슴을 잡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행히도 폭토는 한 두 달을 끝으로 그만뒀다. 그다음에는 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장실 앞으로 가도 토하는 것이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먹는 것과 토하는 것의 고리는 끊게 되었다. 그러나 음식의 종류와 체중에 대한 강박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