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습관은 모순적이었다. 친구와 백반을 먹으러 가면 흰쌀밥은 다이어트에 방해가 되니까 거의 먹지 않고 반찬 위주로 아주 조금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카페에 가면 당연히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러나 커피를 다 마셔갈 때쯤이면 배가 고파져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고 싶어 했다. 어느 날은 밥을 다 먹고 간 카페에서 갑자기 커피를 마시다가 에그타르트를 시키는 나를 빤히 보던 친구가
“너 쌀밥을 너무 안 먹어서 그래. 그럼 허해.”라고 말했다.
쌀을 먹지 않았으니까, 점심을 조금만 먹었으니까 초콜릿을 한두 개는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밥도 거의 안 먹었는데 초콜릿 바 하나는 먹어도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늘 칼로리를 계산하면서 적당히 타협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한 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7시에 일어나서 평소처럼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시간인 12시까지 버티려니 너무 배가 고팠다. 난 배고프면 집중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학교에서 대충 멍 때리면서 수업을 듣던 때와는 다른 긴장감과 두뇌 사용에 아침을 제대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앞 모든 프랜차이즈 카페들에서는 아침에 ‘모닝세트’로 커피 한 잔과 함께 샌드위치, 베이글, 머핀 등을 팔았다. 워낙 빵 종류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그동안 다이어트를 한다며 밀가루를 먹지 않던 내가 샌드위치라니. 그래도 간편하고 적당히 배부르고 칼로리와 영양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먹었다. 오늘은 아침으로 어느 카페에서 무슨 빵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아침에 회사를 가는 낙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점심때가 되면 회사 사람들과 늘 식사를 함께 했다. 점심 식사 메뉴를 내가 고르는 적은 거의 없었다. 짜장면, 햄버거, 파스타, 피자 등 메뉴는 매일 내가 원래는 먹지 못했을 음식으로 채워졌다. 그래도 배가 고팠고, 맛있었기 때문에 잘 먹었다. 솔직히 그런 음식들이 내 앞에 준비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먹기 싫었다. 저 음식은 살찌는 음식인데, 내가 안 먹는 음식인데, 속이 불편한 음식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두려움마저 들었다. 그러나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어느새 누구보다 잘 먹게 됐다. 역시나 맛있는 음식들은, 먹으면 안 되는 ‘나쁜’ 음식들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남길 수가 없었다.
배부르게 먹어도 이상하게 3시 정도가 되면 다시 배가 슬슬 고파왔다. 그때쯤이면 누군가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러면 커피와 함께 쿠키, 초콜릿 등의 가벼운 간식을 좀 먹고 다시 6시까지 일을 했다. 정시 퇴근을 하는 날이면 너무 배가 고픈 상태로 집에 왔다. 집에 오면 7시. 미친 듯이 고구마를 먹다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결국 과자, 빵, 초콜릿 등 집에 있는 간식들을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다시 아침, 모든 것의 반복.
그렇게 3개월을 반복하니 교환학생 때의 몸무게를 금방 초과해버렸다. 또다시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한 것이다. 3개월 인턴 기간이 끝나고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내가 아는, 내가 효과를 본 다이어트 방법은 하나였다. 다시 음식 종류와 양을 제한하는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쉽게 체중이 줄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에는 두 달 동안 다이어트를 해도 ‘입 터짐’이 한 번도 없었는데, 다이어트 다짐을 하고 식단 조절을 한 지 3일이 되면 꼭 미친 듯이 단 게 당겼다. 밤 10시에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다 먹고 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먹은 다음 날 체중을 재면 늘어나 있었고, 내가 ‘먹어도 되는 음식’들만 조금 먹은 다음 날에는 체중이 줄어 있었다. 절식과 폭식의 반복 속에서 체중은 서서히 줄었다. 체중이 감소하는 걸 보면 다이어트가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몸무게가 줄어도,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그 순간에만 안도감이 들뿐, 나는 하루 종일 나 자신 때문에 불안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나의 식욕 때문에 늘 조심해야 했다. 식욕이 아침에 터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러면 내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날은 더 절식해야 했으니까. 한 번 붙은 식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난 일단 입맛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했다. 폭식은 주로 집에 혼자 있을 때 했다. 집에 누가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 먹었으므로, 집에 누가 오는 기척이 들리면 화들짝 놀라서 정신이 들고 음식을 먹은 흔적을 치웠다. 그러고 나면 후회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