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감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공감하는 것은 물론이고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며, 심지어 대중매체에 나오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사연에 같이 기뻐하고 안타까워한다. 사람들은 공감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고 위로 받는다. 또한 ‘능력’이라는 단어와 붙여 ‘공감 능력’으로도 쓸 정도로, 공감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역량이자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권시진·오흥권
요즘 나를 가장 자주 움직이게 하는 감정은 '공감'이다. 단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넘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글이나 사진, 심지어 댓글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저 감상이라 여겼던 이런 감정의 진동이, 이제는 삶의 중요한 힘이라는 걸 느낀다.
어느 날, SNS에서 한 이주 노동자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매일 열두 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그의 삶은 내 삶과 직접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날, 나는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무너짐 속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낯선 사람의 말에 이렇게 울컥하는 나를 보며, 우리는 정말 ‘공감의 시대’를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의 공유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잠시나마 살아보는 일이다.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마음으로 세상의 무게를 견뎌보는 일이다. 그러니 공감은 연습이자 선택이다. 더 정확히는, 타인을 향해 마음의 여백을 남겨두는 일이다. 내가 꽉 채운 세계 안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공감이 시작된다.
공감이 하나의 '능력'으로 언급된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더 이상 그것은 따뜻한 성품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역량이라는 뜻이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말보다 아픔을 먼저 들어야 하고, 교실에서는 학생의 말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읽어야 한다. 회의실에서도, 거절하는 대신 이해하고, 이기려 하기보다 다가가야 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공감은 때때로 피로하다. 세상엔 아픈 이야기들이 너무 많고, 그 고통에 매번 마음을 쏟다 보면 나 자신이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공감은 곧 잘 ‘경계’와 ‘회복’의 기술과 함께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괜찮아야 타인을 바라볼 수 있고, 나의 감정도 존중받아야 타인의 감정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공감이라는 말 앞에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냥 느끼는 것을 넘어서, 그 감정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나아가 그 공감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작은 선물, 따뜻한 말, 진심 어린 귀 기울임. 공감은 결국, 행동으로 완성되는 감정이다.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감은 그래서 시대를 관통하는 ‘따뜻한 힘’이다.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떨림을 느꼈다면, 그건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