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보다 쉬워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떠올릴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투다리의 메뉴들을 생각한다. 얼큰한 김치우동, 칼칼하게 매운 낙지볶음, 푸짐한 치즈 닭갈비, 따끈한 모둠 어묵탕. 하나같이 나의 소울푸드들이다.
우리 엄마는 투다리 사장님이다. 투다리 조촌점(미약하게나마 홍보가 되려나)의 사장님이 되신 지 벌써 14년이 넘었다. 내가 투다리 음식을 먹은 지도 그 시간만큼이다.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도 물론 맛있었지만 바쁜 가게를 도와드리러 갔다가 먹는 투다리 음식들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엄마는 손님상에 나가는 기본 안주 하나에도 정성을 들이는 사장님이었다. 아삭한 야채를 버무려 만든 샐러드, 고소하고 따뜻한 번데기탕, 바삭하고 짭조름한 과자들. 서빙을 도와드리다가 손님들이 '우와, 여기 기본 안주 잘 나온다.'라고 하면 내가 괜히 뿌듯해지곤 했다.
우리 집 베스트 인기 메뉴는 단연 김치우동이다. 손님들에게도, 나에게도 그렇다. 특히나 이렇게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면 더 생각난다. 큰 뚝배기에 신김치 가득 넣고, 탱글탱글한 우동 면발 그 위에 고소함을 더해 줄 유부, 식감을 살려줄 팽이버섯, 칼칼함을 더해 줄 청양고추와 고춧가루까지. 따뜻한 뚝배기에 담긴 얼큰한 국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 '캬~' 느끼하고 답답했던 체증이 내려간다. 거기에 탱탱한 면발, 그 위에 아삭한 김치까지 곁들여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엄마가 끓여주는 김치우동을 유난히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처럼 퇴근길이 추운 날이면 더 생각난다. 옷은 아직 가을인데, 부는 바람은 영락없이 겨울이었다. 점심으로 구내식당에서 먹은 밥이 금방 소화되는 탓에 오후 3시부터 배가 고팠다. 고픈 배에 차갑게 부는 바람은 간절하게 엄마의 김치우동을 떠오르게 했다.
"엄마, 나 김치우동 먹고 싶어."
"김치우동? 서울로 배달해줄까?"
"응!!! ㅜㅜ"
"김치우동 생각보다 쉬워. 한번 해봐. 김치 송송 썰어서 먼저 끓이고.....(중략)"
그래? 한번 끓여볼까...!
당연 투다리에서 먹는 고퀄의 김치우동 맛은 아니었지만, 처음 끓여보는 것치곤 김치우동 비슷한 맛이 났다. 아니 심지어 맛있었다. 춥고 배고팠던 자취생에게는 이 정도 김치우동도 감지덕지했다. 뚝배기 비슷한 곳에 담아놓으니 따뜻하고 얼큰한 게 쌀쌀한 날씨와 딱 어울렸다. 사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김치우동은 라면 끓이는 것보다 더 쉬웠다. (왜냐하면 진짜 라면이니까...)
자취생 냉장고에는 재료라고 할 만한 채소, 야채 등이 없다. 사다 놓으면 제때 써먹지도 못하고 썩히기 일쑤여서 그때그때 장을 보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배고프고 추운 날엔 장을 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집 오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모든 재료를 해결해야 한다.
편의점에서 얼큰 우동 컵라면 하나, 배고프니까 김밥도 하나, 얼큰함을 위해 청양고추 하나를 구입했다. (7천원 정도 나왔다. 이럴 거면 근처에서 김치우동 한 그릇 사 먹는 게 더 싸다.)
이제부터 김치우동은 라면 끓이듯 끓여만 주면 된다.
1. 엄마표 김치를 달궈진 냄비에 넣고 기름 없이 볶는다.
2. 조금 볶다가 물 한 컵에서 한 컵 반 정도 넣고 끓여준다.
3. 건더기 수프, 간장 수프를 넣어주고 마저 끓이다가 우동면 넣어주고 마저 끓여준다.
4. 마지막으로 청양고추 썰어서 고명으로 올리면 끝!
가족 단톡방에 내가 끓인 김치우동(라면인건 비밀) 사진을 올렸다. 엄마에게 보란 듯이 나도 잘해 먹고 산다고, 걱정 말라며 사진을 올렸다. 김치우동도 맛있었고, 가족들에게 자랑도 했고, 분명 뿌듯하고 성공적인 저녁이었다.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앉아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좁은 원룸이 괜히 크게 느껴진다. 분명 김치우동 한 그릇을 다 비웠는데 괜히 허기가 느껴진다. 엄마가 해준 김치우동을 먹을 땐 속까지 든든했는데, 내가 끓인 김치우동은 아무리 그럴듯한 그릇에 담아두었어도 인스턴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실패다. 엄마의 음식이 더 그리워졌다.
안 되겠다. 이번 주말에 군산행 버스를 타야겠다. 인스턴트 김치우동 말고, 엄마가 끓여주는 진짜 김치우동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