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왜 맛있지?"놀라실 거예요.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 같은 건 없었다.
"역류성 식도염입니다."
속이 쓰려 잡히지도 않는 위를 부여잡고 있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그즈음 난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는 제발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 같은 건 없었다. 어떤 날은 중요한 일에서 실수해서 팀에게 피해를 줬고, 어떤 날은 전화응대를 하며 새어 나오는 한숨을 감추지 못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했다. 또 어떤 날은 사소한 오해로 동료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했다.
퇴근을 하면 모든 게 귀찮아졌다. 그 핑계로 평일엔 편의점에서 즉석식품들을 주로 먹었다. 주말에는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각종 배달음식을 시켜 과식을 했다. 떡볶이, 피자, 치킨 등 매번 욕심껏 음식들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소화제가 없으면 불안해졌다. 식사를 하고 나면 매번 체하는 기분이 들었다. 소화가 안되다 못해 가슴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병원에 갔다. 단순한 소화불량인 줄 알고 소화제만 먹었다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환자분, 역류성 식도염 쉽게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식습관 개선 안 하시면 암이 될 수도 있는 병이에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픈 건 위장뿐만이 아니었다. 움츠러든 어깨, 나도 모르게 숙여진 고개, 웃음을 잃은 얼굴. 모든 게 건강하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하루의 모든 순간을 헤아리며 후회하곤 했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그때 좀 더 여유 있게 행동할 걸', '그때 그냥 죄송하다고 할 걸'.
어린 시절, 엄마는 나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매번 품을 들여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셨다.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부엌에 가면 늘 엄마가 계셨다. 방금 무쳤다며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나는 나물을 내 입에 넣어주곤 하셨다. 덕분에 매일 갓 지은 밥과 따끈한 국을 먹고 학교에 갔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뼈가 튼튼해지고, 살이 붙었다.
엄마가 정성스레 키워놓은 나를, 나는 너무나 쉽게 병들게 했다. 건강하지 못한 지금의 나를 보고 엄마가 얼마나 속상해하실까.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한 음식이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음식'을 검색했다. 다들 입을 모아 양배추를 찬양했다. 마트에 들러 양배추 반통을 사고, 레시피를 검색했다. 내가 선택한 건 <양배추 덮밥>. 집에 계란과 베이컨, 그리고 굴소스가 있길래 선택한 레시피였다.
양배추가 뭐 얼마나 맛있겠어... "어?"
HOW TO MAKE
1) 양배추를 먹을 만큼 썰어주세요.
2) 썰어 둔 양배추가 잠길 만큼 물을 넣어주고, 세척을 위해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주세요.
3) 베이컨을 썰어 주세요. (스팸, 소시지 모두 좋아요. 버섯이나 , 닭가슴살도 괜찮아요.)
4)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햄을 먼저 익혀주세요.
5) 베이컨이 익으면 썰어둔 양배추를 넣고 같이 볶아줍니다.
6) 굴소스가 있다면 굴소스 1 스푼을, 없다면 진간장 2스푼을 넣어줘도 좋아요. 후추는 많이 많이.
7) 가운데 동그란 자리를 만들어준 다음, 계란 하나를 익혀 프라이로 만들어 줍니다.
8) 갓 지은 밥 위에 정성 들여 요리를 플레이팅 해주면 끝!
마트에서 양배추를 고를 때만 해도 '양배추가 뭐 얼마나 맛있겠어? 건강을 위해 먹는 거지.'라며 양배추를 무시했다. 어릴 적에도 엄마가 밥상에 양배추가 들어간 반찬을 올려주시면 그 속에 있는 햄이나 고기만 쏙쏙 골라먹었다. 건강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먹어보자 하며 첫 숟가락을 들었다.
"어? 왜 맛있지?"
알맞게 익은 양배추는 달짝지근했다. 굴소스로 향을 입혀서인지 고급스러운 풍미가 올라왔다. 아삭하고 씹히는 양배추의 식감도 좋았다. 짭짤한 베이컨은 씹을수록 고소해졌고, 거기에 따뜻한 밥까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이번엔 계란 노른자를 터트렸다. 노른자가 터지면서 양배추와 밥알을 촉촉하게 감쌌다. 계란의 고소함까지 더해지니 맛있음은 배가 됐다.
먹을수록 속이 더부룩해지던 밀가루 음식들과 다르게 양배추 덮밥은 먹어도 먹어도 부담이 없었다. 따뜻한 양배추가 위를 보호해주는 기분이었다. 밥을 다 먹고 오랜만에 소화제 없이도 속이 편했다.
그 이후로 거의 매일 양배추 덮밥을 해서 먹었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나를 많이 위로했다.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컵밥을 먹을 때보다 시간과 품이 몇 배 더 들어갔지만, 그 몇 배의 정성으로 나를 위로했다.
오늘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마트에 들러 양배추 반통을 사보길 추천한다. 고생한 나를 위해 정성껏 밥을 하고, 몸에 좋은 양배추를 그 위에 올려보자. 그리고 나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위로를 건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