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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바닐라라떼 Dec 07. 2020

자취생인데요, 배달어플을 삭제했습니다.

대신 온라인으로 장보는어플을 설치했어요.

나는 7평 남짓한 원룸에 산다. 현관에서 침대까지 두 발자국, 침대에서 주방까지는 세 발자국, 그리고 주방에서 화장실까지 한 발자국이면 도착하는 작은 공간이다. 첫 자취를 시작할 때 '어차피 여기에선 잠만 잘 거니깐.' 하고 생각했었다. 정말 그랬었다. 운 좋게 칼퇴하는 날을 빼놓고는 야근과 회식이 잦았다. 거기에 더해 개인적인 저녁 약속까지 있었으니 집에서는 정말 잠만 잤다. 그랬는데...?


코로나, 역대급 빌런이 등장했다. 그것 이후에 나의 생활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출퇴근 길에만 썼던 것을 사무실에서도 하루 종일 쓰게 됐다. 그러다 이제는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한다. 예정되어 있던 저녁 회식이 취소되었다가, 점심 약속도 취소되고. 그러다 모든 모임이 없어졌다. 모든 외부활동이 멈췄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오직 7평 남짓한 이 원룸이었다. 잠만 잤던 곳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처음엔 사실 편했다. 숨 막히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불편한 정장 대신 편한 잠옷을 입고 근무할 수 있어서 편했다. 어려운 저녁 회식자리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도 좋았다. 밀린 드라마를 몰아보는 것도 재밌었고, 편하게 시켜먹는 배달음식도 맛있었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새벽까지 핸드폰을 봤다. 날짜의 개념이 없어졌다. 평일인지, 주말인지 헷갈렸다.


늦잠을 자고 겨우 일어난 주말 오후, 우연히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 나는 폐인이었다. 감지 않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있었고, 목이 늘어나고 해진 티셔츠를 며칠 째 입고 있었다. 빨래통에는 밀린 빨랫감들이 산처럼 쌓였고, 배달시켜 먹고 나온 일회용품 그릇도 쌓여있었다. 매일 먹는 자극적인 음식에 피부에는 뾰루지가 올라왔고, 배와 옆구리에는 착실하게 살이 쪄있었다. 우울감이 몰려왔다. 1인 가구의 가장인 내가, 무너져있었다.


제가 무슨 안 좋은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배달의**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일단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버렸다.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밀려있던 빨래와 함께 세탁기에 넣었다. 아껴두었던 바디워시를 뜯었다. 향기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비싼 바디워시로 몸을 씻었다.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몸을 씻었다. 선물 받은 새 잠옷을 꺼내 입고, 오랜만에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였다.


그리고 배달어플을 삭제했다.


배달어플을 이용하면 맛있는 음식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배고플 때 시키다 보니 평소 양보다 더 많이 시키게 되고, 자극적인 맛이 금방 질리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회용기에 담겨있는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환경호르몬도 함께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고 어설프지만 정성스럽게 나를 위한 식사를 차리기로 했다.




처음엔 컵라면 대신 라면을 끓였다. 일회용기 대신 사기그릇에 라면을 담아 김치와 함께 먹었다. 햄버거 대신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다가 그릇에 옮겨두고 먹었다. 그러다 밀 키트로 나오는 제품들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설명서에 나온 그대로 볶기만 해도, 끓이기만 해도 근사한 한 끼 식사가 만들어졌다. 조금 더 욕심이 나서 신선한 야채를 샀다. 파를 어슷썰기 하면 국물용으로 넣고, 불고기에 넣을 땐 파채 썰기 하고, 파 기름을 낼 땐 다지기를 하는 게 신기했다. 팽이버섯을 사서 대패삼겹살에 말아서도 먹어보고, 불닭소스와 함께 조려서도 먹어봤다. 음식을 하는 과정, 그리고 예쁜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 그리고 그 음식을 맛보는 과정 모두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직접 만든 음식은 어설펐지만 속이 편했다. 맵고 자극적인 양념으로 버무려진 햄버거를 먹고 속이 쓰려 위장약을 찾을 때, 나에게 미안했었다. 배달음식으로 과식하고 소화제를 먹을 때도 살이 찔 거란 생각에 괜히 우울했었다. 이제는 야식이 먹고 싶을 땐, 신선한 야채와 기름기가 적은 오리고기를 함께 볶아 먹는다. 칼로리 높은 피자를 시켜먹는 대신 자투리 야채를 넣은 에그인 헬과 마늘 빵을 만들어 먹고, 자극적인 맛이 생각날 땐 채소 듬뿍 넣은 주꾸미 볶음을 먹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더욱 심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에서 2단계로, 다시 2.5단계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 그 거리두기 속에서 경제적 불황과 함께 심리적 불황이 함께 찾아왔다. 그 불황 속에서 내가, 그리고 우리 집이 무너졌다. '아무도 안 보는데 뭐, 어때'라고 생각했었는데 거울 속 내가 보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나'까지 잃을 수는 없다. 코로나로 심리적 불황을 겪고 무너진 또 다른 1인 가구의 가장이 있다면 향기 나는 샴푸와 바디워시로 몸을 깨끗하게 하고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편리한 배달어플 대신 신선한 야채를 손질하고, 파 기름을 낼 때 올라오는 향을 맡고, 완성된 음식을 예쁜 그릇에 내어보길 추천한다. 거울 속에 무너진 가장 대신 1인을 잘 먹여 살리고 있는 늠름한 가장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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