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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바닐라라떼 Oct 16. 2020

1인 가구 가장의 이야기

퇴근한 가장에게 집밥 대접하기


 나는 1인 가구의 가장이다.


가장의 하루는 늘 바쁘다. 책임질 사람은 단 한 명이지만, 그 한 명이 결코 만만치 않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다. 월급통장은 금세 텅장이 되어버린다. 텅장이 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은 나를 먹이는 일이다. 가여운 가장의 월급으로는 비싸고 좋은 것을 매일 먹일 수가 없다. 


그래서 최대한 정성스럽게 먹이기로 했다.


처음 살았던 집엔 주방이 따로 없었다. 회사에서 운 좋게 당첨되어 들어간 관사였는데 주방이 공용이었다. 그래서 늘 밖에서 사 먹었다. 집에서 먹는다고 해도 편의점 도시락, 컵라면, 김밥,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때웠다. 처음 한 달 두 달은 분명 맛있고 좋았는데 6개월 정도까진 그래도 참고 먹을만했는데, 점점 그런 음식들이 질리기 시작했다. 질리는 게 문제가 아니고 몸이 점점 아팠다. 아파도 먹을 수 있는 건 밖에서 파는 '죽' 밖에 없었다. 어느 땐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으러 본가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러다 하나뿐인 우리 집 가장 무너지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7평 남짓 좁은 원룸이지만 나만의 주방이 있는 집을 얻게 되었다. 처음엔 할 줄 아는 요리가 하나도 없어서 컵라면 대신 라면을 정성스럽게 끓여 먹었다. 라면만 먹는 게 아니라 슈퍼에서 사 온 김치를 정성스럽게 그릇에 내어 먹었다. 그러다 원데이 클래스 강의로 '집밥의 대명사, 궁극의 소울푸드 고추장찌개'를 배웠다. 


고추장찌개를 만드는 건 뭐 하나 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감자는 깍두기 크기로 썰고, 고추는 텀벙텀벙 사다리꼴로 썰고, 파는 어슷하게 썰어야 했다.(전수받은 레시피에 적혀있는 그대로다.) 그리고 썰어놓은 재료들을 넣을 때도 모두 순서가 있었다. 가장 오래 익혀야 하는 감자부터 넣고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다른 야채를 넣는 식이었다.  고추장을 3스푼, 된장을 1스푼 넣으면 고추장찌개가 되고 된장을 3스푼, 고추장을 1스푼 넣으면 된장찌개가 된다는 게 재밌었다. 


갓 지은 밥에 내가 만든 고추장찌개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오던 날,

나는 날 위해 요리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동안 정성스럽게 나를 먹였던 기록들


그 뒤로 나는 유튜브 채널들을 스승님 삼아 자주 요리를 했다. 나를 위해 하루 한 끼는 꼭 내 손으로 밥을 지어먹었다. 신선한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꽤나 벅찬 일이다. 나를 위해 정성 들여 한 상을 차려 놓고 먹으면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그 대접받는 기분이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밖에서 누군가에게 대접받지 못하고 돌아온 날엔 그 어느 날보다 정성스럽게 밥을 차렸다. 내가 나를 대접해주려고.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일이니까. 


나는 그 정성스러운 번거로움을 사랑한다. 특히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면 더더욱. 

그렇게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정성스러운 밥을 짓는다.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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