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 - 내 안의 식욕이라는 야생마
교육대학원 가을학기가 시작됐다
장학금 1원도 없이
내돈내산의 자발적 등록인데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참으로 귀찮다
작년겨울
대학원을 지원할 때의 열정적인 나에게 참으로 면복이 없잖은가
방학 동안 노는 관성이 생겨버린 탓에 전공책이 낯설다
'공부는 다~~ 때가 있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어도,
기원전 5000년 경 수메르의 점토판부터 기록매체의 발전과 함께 또박또박,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조목조목 보존해 놓으신 선조들의 조언을 읽었어도,
이번생이 처음인 나는
먼 길을 돌아 돌아 이 길에 서있다
도서관에서
눈에 드는 시집 한 권을 빌려 나왔다
문학동네시인선 032 박 준 시
집
표지의 띄어쓰기를 일부러 <시> 행바꿈 <집>으로 디자인했다고 들었다
시 와 집 이라니 참 포근하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
<관음-청파동 3>이라는 시를 보면
"나는 걸어가기엔 멀고
무얼 타기엔 애매한 길을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도전할 때의 내 마음이 "걸어가기엔 멀어"보였는데
이런 고민이"누구보다 많이 있다"는 박 준 시인의 구절에 공감되어
듬뿍 위로받았다
천고마비라 했던가
하늘은 높고 내 안의 식욕이 야생마같이 날뛰니 큰일이다
오늘은 박준 시인의 시집을 지어다가 허기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