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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03. 2020

구조적 차별에 대한 기본적 이해

사랑하는 아빠에게, 뒤늦은 고백

나의 아버지는 칠순을 몇 달 앞두고 돌아가셨다.


1월의 어느 월요일, 출근 후 점심을 먹은 후에 동료의 근무 초소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아빠의 초소로 걸어가는 길, 그 위에서 '스르르' 무너져 내리듯 쓰러지셨다.


현장을 목격한 인근 상가 주인이 어설프게나마 인공호흡을 시도했고 3분 거리에 있던 소방서에서 구급차가 출동해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20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내가 연락을 받고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아빠는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었다. 10분 남짓의 이동 시간 동안 막연히 나는 아빠가 깨어나지 못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빈농의 장남이었던 아빠는 중졸의 학력으로 통신공사 기술직을 배워 전국을 떠돌며 전신주를 타거나 맨홀 뚜껑 아래에서 작업을 하셨다. 민주화 현장, 데모 그런 건 몰랐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 쪽이셨다. 언젠가 투표할 때 누구를 찍었냐는 엄마의 물음에, 내가 찍는 사람은 한번도 안 됐어, 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 뒤 투표권이 다섯 장 있던 우리집 식구들이 유일하게 찍은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였다.)


말재주가 없던 아빠는 사업에도 수완이 없어서 IMF 이전에 아파트를 처분해서 시골로 내려가 버섯 농사를 짓게 됐다. 결국 그 아파트 날렸지만 어찌어찌 엄마의 수완으로 10년 뒤 다시 도시로 나왔다.


하지만 아빠는 고향에 남아 그냥 버섯재배를 하고 싶어하셨다. 도시에서 더이상 자신이 없으셨을 게다. 이미 IMF를 거치면서 잘 나가던 친구들이 망하는 것도 봤고 뉴스마다 비정규직의 처우에 대한 공포가 넘쳐나고 있을 때였고 직장 생활 시작한 두 딸 역시 하나는 비정규직(나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방송 작가는 비정규직이다)이고 하나는 강원도 산골에서 겨우 자리를 구한 초짜 방사선사였으니 아빠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드셨을 거다.


대학생인 셋째딸과 고등학생인 막내 아들도 있었으니 돈은 계속 들어갈 테고 그러면 일을 해야는데 시골에서는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싶으셨을 것도 같다. 농협에서는 농업자금을 저리로 대출해주고 자녀 학자금 대출도 해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어떻게든 돼서 살긴 살았지만 아빠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게 엄마의 변이다. 현재 자신의 위치가 지하실 같았다는 우연한 고백... 그걸 듣고 어떻게 해서든 다시 도시로 나가야겠다고 엄마가 이를 악 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대전으로 나와 일자리를 찾았지만 아빠 역시 '임계장'이 되셨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며 계속 이곳저곳을 옮겨다니셨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 내가 들은 유일한 말은 아파트 동대표가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라고 했다는 것과 경비초소 시멘트 바닥에서 돗자리를 깔고 잘 때 모멸감이 들었다는 말... 그 때 내가 엄마로부터 그 말을 전해듣고 어떻게 반응을 했더라....


<임계장 이야기>에서 조 작가는 어려운 환경 안에서 따뜻한 일들이 있었음을 전한다. 초등학생 손자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를 하던 미화원 '누님'에게 공부를 가르쳐 줬던 에피소드에서 나는 특히 울컥했다. 공부하는 김에 중졸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던 그 누님에게 기출문제집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누님은 힘들어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짜 공부를 좋아했던 그 누님.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관계대명사'를 이해해 보려고 부던히 노력하던 그 누님을 6개월 간 도운 조 작가님의 마음 씀씀이가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모든 현장에서 '임계장'을 힘들 게 하는 건 경비반장 같은 '마름'짓을 하는 존재들이다. 위에서 찍어누르는 이들의 수족이 되어 자발적 감시를 하는 이들... 그들 역시 구조적 차별을 만들어낸 시스템의 피해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는 일들이 많다. 뭐 우리 사는 주변에도 이런 마름들이 늘 있으니까.... 


방송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위계 상황에서 하위 계층의 노동이 경비직이다. <임계장 이야기>가 출간된 이후에도 주민 갑질로 자살한 경비원들의 소식이 지속적으로 뉴스에 오르내렸다. 드라마에서도 대표적으로 가사도우미와 함께 경비직이 하대받는 노인 직종으로 재연되곤 하는 현실을 보며 드라마의 전개상 필요한 건지, 필요 이상의 자학성은 제재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드라마를 보며 미학을 논할 건 아니지만 사회적 순기능 정도는 바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적힌 글이 결정적으로 나를 또 울렸다. 

가족들이 이 글을 읽고 그 동안 몰랐던 걸 알게 되더라도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

처음에 이런 노동 - 24시간 아파트 경비와 24시간 건물 경비를 하느라 아내가 옷과 도시락을 싸서 근무지로 날랐던 상황 - 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대학교 3학년 아들의 로스쿨 진학을 위해 천만원 넘는 학비를 대기 위해서라는 걸 읽고 정말 아들놈을 때려주고 싶었는데 돌아보니 이 상황에서 가슴을 쥐어뜯고 싶은 사람은 바로 그 아들이겠구나 싶었다.


또한 정말 '생활'이 아닌 '생계'를 위해 일하는 수많은 '임계장'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누가 누구 때문에 아프냐는 문제를 떠나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인권과 존엄이 유지되어야 마땅함을 되새긴다.


도시인 79%가 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갑질은 가해자의 인격을 드러낸다. 어디서 사람구실 못하던 치들이 사람한테 함부로 하지, 자기 인격 드러나는 줄 모르고. 그러지 맙시다. 타의 모범이 되는 인생은 못 살아도 손가락질 받는 인생은 되지 말아야겠죠?


조 작가님 글, 아픈데 따뜻해서 아빠 생각이 난다.

임계장이셨던 아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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