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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ug 14. 2018

이영자와 김지양 사이

편견은 사양합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요즘 수영을 배운다.

내년이면 생존수영 배울 텐데 뭘 벌써 배우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생존수영은 전국의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학기 중 일주일 동안 수영장에서 잎새 뜨기를 배우는, 아주 짧은 기간에 진행되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수업이라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기술을 습득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난이도로써 구분하는 자유영, 배영, 평영, 접영은 배우지 않는다. 


수영하는 아이를 기다리면서 엄마들은 - 정말 한결같이 다 엄마 아니면 할머니다. 아이 수영 보내려면 엄마는 일을 가지면 안 되는  현실...... - 가끔 수영복 품평을 할 때가 있다. 애들이라 수영복 품평만 할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몸매에 대한 말도 오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화제가 옮겨갔다. 수영복의 연관검색어로 뜰지도 모를 개그맨 이영자에게로. 미스코리아 선발 시즌도 지났는데 수영복으로 이렇게 핫해지다니, 대세는 대세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이영자의 수영복 차림이 이슈다. 수영복의 디자인이 개인의 취향을 저격했다는 친절한 '해설'부터 섹시하다는 ‘칭찬’까지, 예전 같으면 컬쳐 쇼크를 받았을 이들이 환호하며 반긴다.

     

컬쳐 쇼크는 오버라고? 아니다. 살집있는 여자가 수영복을 입었을 때, 그냥 자기 집에서 혼자 보고 감상한 게 아니라 수영복 차림의 화보를 찍고 인터뷰를 하면 대국민 테러를 당했다.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이 바로 그 당사자다. 기억이 안 난다면 위의 사진을 다시 한 번 보시라. 이영자와 김지양, 그 둘의 차이가 뭐가 있는지. 친숙한 얼굴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영자와 김지양은 모두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수영복을 입고 대중 앞에 서는 게 더 자연스러운 건 이영자가 아니라 김지양이다. 김지양은 옷을 입는 게 직업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댓글창 등을 통해 드러난 한국 대중들의 수준은 참담하다. 모델 김지양의 인터뷰 기사에는 어김없이 ‘뚱뚱하다 = 게으르다’는 등식으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글이 달렸고 - 비록 당사자는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 그런 글을 읽는 또다른 이들을 부끄럽고 슬프게 한다.
     

대중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냥 이영자에 한해서만, 이영자이기 때문에 그의 살집이 섹시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자’가 있음에도 ‘당당하게’ 공개했다, 여기에 점수를 준 것이다. 대중들은 여전히 몸매와 성격을 연관 짓고 편견을 두른 채 훈장질 중이다. 비단 체형에 대한 분류만은 아닐 것이다. 키가 커서 싱겁다, 이마가 좁아서 속이 좁다 등등 타인의 외모를 소재로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시키는 데 한국인들은 특화되어 있다. 아, 혈액형도 사람의 특징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낙인이다. 극소심자에게 붙는 트리플 에이형이 대표적이다.

     

객관적인 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주관적인 것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기준이 바뀌는 걸 뜻한다. 편견은 주관적이다. 뚱뚱한 사람이 게으르다는 편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런 당신의 편견에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순간 폭력이 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면 공론장이다. 댓글창, 잡지, 공개적인 장소, 방송 이런 공론장에서 자신의 편견에 동의를 구하지 말라. 특히나 그게 정답없는 소모전인데다가 사람 하나 잡을 일 같으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할지니.

     

이영자는 되고 김지양은 안 되나. 세상의 모든 분야 중에 미적 기준만큼 주관적인 분야도 없다. 전근대적인 시대에는 세상의 기준이 하나였기에 미의 기준도 하나였다. 개성시대에 들어선 지가 언제인데 미적 기준만 전근대에 머물고 있나. 사회 생활 잘 되는지 진심 걱정이다. 이영자도 되고 김지양도 된다. 안 되는 건 애써 인정받고자 고군분투하는 당신의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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