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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pr 28. 2020

어떤 차별, 그땐 그랬더라도

차별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차별 이후의 태도가 다를뿐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몇 개 정리해 보면 이렇다.

국적은 대한민국, 성별은 여성. 서울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초-중-고를 졸업했으니 유년과 학창시절을 모두 지방에서 보낸 지방민. 결혼 후 아들 하나를 낳고 키우느라 21세기에 흔하디 흔한 '경단녀'의 반열에 올라 10년의 인고 끝에 사회적 관계를 새로 모색하고 있는 상황. 그러니까 정리하면 한국 국적의 지방 출신 40대 경단녀, 정도가 현재 내 포지션이 되겠다.


내가 차별에 대해 민감해진 건, 솔직히 말하면 민감하다고 말하기 무안할 정도로 까칠하게 구는 건 내가 바로 차별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당한 '차별'에 대해 정리해볼까 한다.


고등학교 때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대전의 빅5 안에 드는 규모의 예식장이었고 나는 32,000원의 일당으로 웨딩 연주 알바를 하는 여고생이었다. 뭔가 좀 그럴 듯한가? 근데 여기에 이런 옵션이 있다. 내 신체 조건이 키 165cm체 몸무게 70kg의 '거구'인 여고생이라는 점. 


피아노를 치는 것과 비만이 무슨 상관인지 나는 몰랐다. 왜냐면, 나는 당시까지 교내 모든 선생님이 인정한 모범생이었고 성적 장학금을 3년 내내 받았으며 피아노를 잘 치고 독서량은 따라올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만심까지는 아니어도 자부심만은 누구 못지 않았었다. 그런데 웨딩홀의 실장은 나를 보자마자 '맞는 옷 있겠냐?'라고 했다. 모욕감, 난생 처음 나를 혐오스럽게 보는 그 눈빛.


환골탈태 수준의 다이어트로 인생을 역전했으면 나 역시 차별의 동조자가 되어 세상 편하게 살았을 것 같다. 그러나 세상만사 누구나 뜻대로 되지 않듯 내 다이어트는 일주일을 못 넘겼고 결국 자신과 타협하며 정신승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면 되잖아. 뚱뚱하다고 일 못해? 난 실력으로 검증받겠어.


하지만 역시 또 내 뜻대로 안 됐다. 내가 취업하던 20세기는 이력서에 사진이 당연히 붙었고 키와 몸무게를 병역필처럼 기재하던 시대였다. 게다가 IMF가 지난 후에는 동일 스펙이면 당연히 '용모단정'한 이들이 우선 순위로 '팔렸다'.


취업 전선에서도 내 외모는 계속 걸림돌이 됐다. 그러다가 우연히 식욕억제제와 각종 시술로 몸무게가 10KG까지 빠지는 경험을 했다. 첫사랑이 참석하는 공통의 친구 결혼식을 가기 위해서였다. 친구의 결혼식 후 바로 요요현상으로 10kg이 다시 쪘지만  소기의 목적은 첫사랑 한 번 스치듯 보는 거라서 상관없었다.


그 때 알았다. 내 원래 몸무게는 70kg. 하루 한 끼 먹고 운동 2시간씩 하고 금주, 간헐적 단식으로 10kg을 감량해도 60kg. 나는 세상의 표준이 될 수는 없다는 걸. 그래서 그걸 요구하는 건 '무식한' 짓이라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외모는 눈에 보이는 차별의 표적이 되기 쉬운 조건이다. 그 외모의 조건에는 사이즈도 있지만 피부색과 같은 인종, 눈에 띄는 장애 유무,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스타일 등 모든 것이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차별의 표식이 된다. 


그런 시각적 조건에 노출된 태생적 낙인은 비만과 더불어 여성이라는 성별이었다. 여성이라는 조건이 유발한 차별도 어마무시하다. 술자리에서 상급자 옆에서 술을 따르는 일, 신입사원 때는 정례행사이다시피 했다.  새벽에 택시타고 집에 오다가 외진 동네 산 초입에서 험한 꼴을 당할 뻔 했을 때, 잠긴 택시 안에서 죽어라 울려댄 경적 소리를 듣고 다가온 순경은 아무일도 없지 않았느냐며 택시 기사를 '훈방'조치 했고 그런 순경의 멱살을 잡았던 나는 공무집행 방해라며 입건했다. 호프집 알바할 때는 서빙하던 내 엉덩이 만진 남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쳤다가 하루만에 짤린 적도 있었다. 더이상 '어린 여자'가 아닌 조건이 될 때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야했던 지난 날들 역시 차별에 민감한 나를 만든 결정적 조건이었다.


그러다가 난민이라는 낯선 이들을 처음 만난 2008년, 깡 마른 아프리카 출신의 아이를 상상했던 내 머릿 속에 균열을 경험하고는 내가 공부를 해야 살겠구나, 싶었다. 나 역시 '난민'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다르게 '상상'했던 것처럼 내가 당한 차별들도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나부터 변하고 세상을 바꾸자. 낯설음에 대한 최초의 감정이 '공포'라는 것, 이성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가 정말 진화했다면 그 이성을 도구로 앎을 얻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이걸 이번 생에서 내가 이뤄야할 목표로 정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나는 내가 당한 차별을 바탕으로 이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바꿔보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글쓰기로 출발점을 정했다. 누구나 다 차별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왜 나쁜지, 차별의 피해가 무엇인지, 차별을 하면 왜 안 되는지를 말해온 수 많은 선배들의 글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미디어가 말하는 것 속에서 감춰진 것들을 찾아가며 구체적으로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나의 꿈에 당신도 고개를 끄덕여줄 그 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세상 최고로 까칠한 여자가 되어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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