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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ug 06. 2024

프롤로그_건물주가 직업인 남자

임대업자는 백수가 아니라 자영업자다


"앞으로는 쌤을 따로 만나면 안 될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러 갔던 야학에서 발이 묶였다. 솔직히 내가 내 발을 담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사회적자본으로서의 봉사활동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러 간 야학에서 10년 넘게 어머님들을 가르쳐 온 두 분의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리고 고맙게도 내게 야학에 나와줄 수 있겠냐고 먼저 손 내밀어 주셨기에 나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야학의 선생님들은 직업도, 나이도, 고향도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중졸 검정고시반과 고졸 검정고시반이 저녁에 운영되고 그보다 앞선 시간에는 한글반이나 영어기초반, 오카리나 같은 악기를 배우는 수업도 있었다. 그래서 다재다능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모든 선생님을 알지는 못했다. 중졸 검정고시반에서 한국사 과목을 가르치게 된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중졸 검정고시반의 앞반 수업 선생님과 나와 동시간에 수업하시는 고졸 검정고시반 선생님 두 분 외에는 없었다.


인터뷰 당시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있었다. 8월 시험이 끝나면 졸업식인데 그동안 열심히 해오신 어머님들이지만 당신들이 이제까지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숨기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정작 그간의 여정을 축하받아야 하는 졸업식에 참석하는 가족이나 지인이 없는 어머님들도 많다고. 그 말이 마음에 쓰여서 나는 졸업을 맞은 10명의 어머님들 각자에게 작은 꽃다발을 준비해서 졸업식에 참석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들이 너무 고마워하셨고 나도 그렇게 야학을 시작하게 돼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 일 때문이었는지 가끔 부정기적으로 이뤄지는 교사 모임에 자주 초대되었다. 비공식적인 야학 교사 모임에 여선생은 나 하나였다. 다들 좋은 마음으로 야학 수업을 해주시지만 그와 별개로 야학 운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야학도 회사처럼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라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하드웨어적, 소프트웨어적 일손이 필요했다. 하다못해 야학 소식지를 후원회원들에게 우편발송하기 위해 봉투에 넣어 주소 라벨을 붙여 보내는 것도 다 야학교사들이 수업 전후로 짬 내서 손으로 작업하는 일이었다.


야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무실이 있었던 나는 자발적으로 이러한 일들에 참여했다. 그런데 나만큼 자주 참여하는 선생님이 한 분 더 있었다. 매주 화요일에 나와 같은 수업 시간에 고등부 사회를 담당하시는 장 선생님은 무시로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면서 무슨 일이든 슥슥 해내는 분이셨다. 9년째 야학에서 활동하는 장 선생님은 야학 전등이 고장 나도 직접 고치고 작은도서관 운영에 쓰일 수많은 책꽂이도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도어록이 고장 나거나 화장실이 막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에어컨 설치 공사도 아는 사람 통해서 저렴하게 진행한 장 선생님은 스스로를 '소사'라고 소개했다.




그해 가을부터 겨울 내내 참석을 할까 말까, 나가서 무슨 얘기를 할까 이런 고민들 전혀 없이 무조건 참석했던 야학 교사 모임은 내 삶에 비타민이었다. 계산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젠 체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소중했다. 그때 나는 홀로서기 위해 수많은 프로젝트를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다져온 선생님들의 투닥거림이 정겨웠고 그 안에 속해있는 나까지 묘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와 장 선생님 둘만 만나는 일들이 늘어났다. 늘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게 아니라 벙개로 만났기에 참석자들이 들쑥날쑥했다. 온다고 했다가 번복되는 일들이 발생하다 보니 집 가깝고 시간이 여유로운 우리 둘만 나오는 상황이 종종 생긴 것이다. 전에는 서로의 개인적인 사정들을 거의 몰랐는데 둘이 만날 때가 되니 각자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밥을 먹고 차로 돌아가던 주차장 한가운데서 뜬금없이 날아든 고백.


"앞으로는 쌤을 따로 만나면 안 될 것 같아요. 내 마음이 자꾸 쌤한테 가요."

"괜찮아요. 원래 나랑 만나는 사람들은 다 나 좋아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장 선생님이 자신이 하는 일이 건물관리인 - 건물주가 아니라 분명히 건물'관리인'이라고 했다 - 이라고 설명할 때도 나는 정확히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나와 만나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지금부터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야학을 그만두고 논문을 마무리 짓고 유학을 가겠다고. 그의 나이가 사십 대 중반이었고 팔순이 넘은 부모님이 계셨지만 나는 그의 꿈을 응원했다. 그가 야학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나는 꽃다발을 내밀었다. 9년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계획에 행운을 비는 의미에서. 동시에 인생의 중반에 새로운 결심을 한 그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답게 나는 바로 질렀다. 


"유학 가기 전까지 우리 만나 봐요."


그날 이후 참 많은 곳들을 함께 놀러 다녔다. 유학 가면 이제 못 놀 테니 그전에 많이 놀자고 했다. 대전에서 가장 늦게까지 벚꽃을 볼 수 있는 침산동으로의 드라이브,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둑에서 마시는 300원짜리 길다방 커피, 계획 없이 남쪽으로 내달리다 길 끝에서 오른 남해의 보리암 정경들....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함께 떠나기로 했고 이듬해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떠나지 못했다.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희망은 안고 우리는 오늘도 함께 건물을 관리한다. 여기까지가 무산계급인 내가 -  나는 결혼 전까지 종합부동산세를 내 본 적이 없었다 - 종합부동산세 살벌하게 내는 남편 덕에 임대업의 세계에 들어온 계기다.


건물주이자 건물관리인인 남편과 함께 노는 날과 일하는 날이 구분 안 되는 백수 같은 일상을 산다는 점에서 팔자가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카톡음 두 번 연달아 울리면 동작이 정지되는 일상도 함께 겪어내고 있음을, 임대차계약서에는 분명 '갑'이라고 쓰여 있지만 돈 내는 고객님은 '을'이 아니라 '슈퍼 갑'이라는 현실을 자주 목도할 때마다 초짜인 나는 갱년기가 온 듯 열불이 난다. 이곳 대나무숲 덕분에 나의 갱년기가 조금은 늦춰지길 바라며...... 



덧글.

회사나 학교에서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우리의 '고객님'들이 왜 우리에게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진상 of 진상을 만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집'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흥칫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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