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 시공주니어, 2002)
그림책 작가 모리스 샌닥은 1928년 뉴욕의 빈민가에서 폴란드계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 캐릭터 미키를 정확히 모사하는 재능을 보였다. 1951년 어린이책의 삽화를 그릴 기회를 얻어 그때부터 그림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샌닥은 평소에 아이들이 거친 세상을 어떻게 부딪치고 이겨내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어린이 동화라고 해서 아름답고 순진하게만 세상을 묘사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렸을 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바탕으로 거칠지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리려고 애썼다. 이를 잘 드러낸 작품이 그의 대표작 <괴물들이 사는 나라>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막 출간되었을 때 아이들의 동심에 해가 될지 모른다며 도서관 대출이 금지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열렬한 지지로 인해 1년 뒤인 1964년 칼데콧 상을 받았으며, 197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1983년 미국 도서관 협회가 수여하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 상을 받았다. 1996년에는 미국 예술 분야에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 예술훈장을 받았으며, 2003년 스웨덴 정부가 제정한 국제 어린이 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200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 외 개구쟁이 미키를 그린 <깊은 밤 부엌에서>, <범블아디의 생일 파티>,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 <아주 머나먼 곳>, <로지네 현관문에 쪽지가 있어요>, <나의 형 이야기> 등 50여권의 동화책을 남겼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시공주니어, 2002)는 어린이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괴물 세계를 그리고 있다. 말썽을 부리다가 끝내 엄마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은 소년 맥스는 꿈속에서 정말 괴물의 나라로 가게 된다. 괴물 나라에서 거친 세계를 신나게 경험한 맥스는 떠나지 말라는 괴물들의 만류를 뿌리친다. 맥스는 잠에서 깨어 엄마가 자신을 위해 차려놓은 따뜻한 저녁을 보고 안심하게 된다.
늑대 분장을 한 채 포크로 강아지를 위협하고 벽에다 함부로 못을 박으며 노는 개구쟁이 맥스. 엄마는 이런 맥스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엄마는 맥스에게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 꾸지람한다. 이에 맥스는 내가 괴물딱지라면 “그럼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대든다. 현실에서 아이가 엄마한테 대드는 건 금기시되어 왔다. 이를 어기면 어른들은 맥스 엄마처럼 저녁밥도 주지 않고 방에 가둬버리는 벌을 준다. 아이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에서는 솔직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이들의 세상은 규칙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규칙 일색인 어른의 세계를 맥스는 당당히 떠난다.
책의 절정은 온갖 괴물들끼리의 만남이다. 엄마한테 괴물의 모습을 한 맥스는 괴물들의 나라로 간다. 그곳에서 맥스는 내부에 숨겨져 있는 괴물 본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며 괴물이 된 맥스는 무서운 눈알을 뒤룩 되고, 발톱을 세워 보이는 괴물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제압한다. 이런 맥스를 보고 괴물들은 “괴물 중의 괴물”이라며 괴물 나라 왕으로 삼는다. 괴물 나라의 왕이 된 맥스는 “이제 괴물 소동을 벌이자!” 라고 외친다.
맥스는 괴물 나라의 왕으로 추앙받으면서 신나게 논다. 마음껏 실컷 놀았다고 생각 한 맥스는 괴물 나라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잠깐의 괴물 생활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비록 괴물 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소리치며 저녁밥도 안 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 버린 엄마일지라도. 맥스를 괴물 나라로 보내버린 엄마도 그 순간엔 괴물이었다. 하지만 맥스가 괴물 같은 엄마를 그리워하면 따뜻한 저녁밥 앞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가 아이여서만은 아니다. 작품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괴물적인 성향에 대한 해결 지점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날 밤에 맥스는 제 방으로 돌아왔어.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책은 1963년 출간 당시 미국의 교육학자들에게 ‘예쁘장하고 귀염성 있는 주인공과 자상한 엄마가 등장하는 그림책의 전형을 훼손했다’며 금서로 지정했다. 엄마를 잡아먹겠다는 맥스의 외침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금서로 지정될 만큼 불편한 지점일 수 있다. 동화는 동화에 그치지 않고 실제의 세상을 반영한다. 그래서 때로는 잔혹 동화로 불리지만 그것이 실제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이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준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잔혹 동화로 분류되기 전에 어린이들에게 선택받고 존중받았다. 이 그림책이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읽히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현실 세계에서 경험한 엄마와의 감정적인 대립을 상상의 세계에서 풀도록 유도하여,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이 맥스와 괴물들의 놀이 현장에서 유쾌함과 통쾌함을 누리도록 한다. 그림책의 백미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책은 맥스의 화난 감정을 표현한 글과 달리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림, 익살스러운 괴물들의 표정으로 그림책 읽기의 재미를 더욱 크게 한다. 펜 선이 그대로 보여 마치 스케치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림은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기보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마치 거친 세상 속에서 나름대로 방황을 하며 커가는 아이들을 다룬 책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까.
아이들은 온갖 괴물들이 득시 글한 세상에서 뒹굴며 자란다. 하지만 따뜻한 가족의 품 때문에 크게 엇나가지 않을 수 있다. 책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아이와 함께 괴물 나라를 신나게 뒹굴뒹굴해보기를 권한다. 어른의 괴물성이 익살스러움으로 희화될 수도 있고, 아이의 괴물 나라를 이해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