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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Mar 03. 2020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단상

바이러스 포비아


1. 예술가의 고민     

예술가들이 늘 하는 고민이 있다.

다 드러내지 않고 의도가 느껴지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에 관한 고민인데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작업하는 나 같은 사람은 결정된 이미지로 한눈에 알아보게 하는 것보다 보는 사람이 스스로 상상할 수 있도록 작품 곳곳 인간의 기저에 깔린 욕망을 끌어낼 수 있는 장치를 심어놓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곤 한다. 보여주지 않으므로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더 세련되고 수준 높은 테크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어릴 적의 기억     

내가 아주 어릴 적 ‘등화관제훈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사이렌이 울리면 무조건 온 집안의 불을 꺼야 했다. 전쟁이 났을 때 북한 비행기에 발각되지 않기 위한 훈련이었는데 실제상황이 아니었어도 어린 마음에 동네를 돌며 빨리 불 끄라고 소리치던 아저씨들의 목소리, 그렇게 겪어보지 못한 전쟁의 분위기를 경험하면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다. 게다가 커튼을 내려 불빛을 촘촘히 막고 가족끼리 모여 앉아 보고 있던 드라마를 몰래 마저 보는 그 순간은 내가 마치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3. 창궐     

지구촌 그 어디에도 폭탄 하나 터진 곳이 없다. 게다가 어느 한 사람도 총과 칼을 들지 않았는데 지금 온 세계가 보이지 않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입자들이 바람에 흩어지고 우리가 사는 공간 구석구석에 흔적으로 남아 인류를 병들게 하고 삶을 위한 모든 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대부분의 판단을 시각적인 것에 의존하는 인간이 그 어떤 실체도 확인할 수 없는 존재에 판단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해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6.25 전쟁처럼 큰 환란을 겪어본 적 없는 요즘의 세대는 이번 사태로 무정부와 무질서가 도래했을 때의 공포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폭탄이 발전소를 포격하고 통신시설을 무너뜨려야만 사회가 마비되는 게 아니란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 때문에 단 몇 주 사이 학교도 직장도 가게도 올 스톱이 되었다.

학교가 쉬게 되면 학교 옆 문방구 사장님도 일할 이유가 없다. 문방구가 쉬게 되면 점심때마다 끼니를 해결하던 문방구 사장님이 없으니 근처 식당 사장님도 쉬어야 한다. 식당이 문을 닫으면 식재료를 유통하는 사장님도, 채소를 재배하는 생산자도 연쇄적으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아슬아슬한 시기에 스멀스멀 등장하는 현상이 아노미(anomie)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삶에 691번째로 중요했던 마스크가 며칠 사이에 제일 중요한 물건이 되었고 이 상황 이전에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고민들 대부분이 한순간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만 봐도 우리가 또 세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증명한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 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이나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것만큼이나 두려워했던 마마(천연두), 에이즈, 에볼라까지 우리 인류는 살아온 역사만큼 보이지 않는 공포에 끊임없이 떨어야 했다.

전염병이 돌자마자 마트에 마스크가 동이 나는 걸 보고 났더니 실제로는 비행기도 날지 않고 전쟁도 나지 않았지만 어두운 곳에서 불을 켜도 될 때까지 숨죽이며 등화관제훈련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만약 전염병이 아니라 전쟁처럼 지금 당장 삶과 죽음의 기로에 쳐하는 상황이 온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질까. 그땐 마스크나 식료품 정도가 아닐 것이다. 양심도 가책도 체면도 법도 순식간에 마스크처럼 동이 날 것이다. 

매일매일 마트를 기웃거려 보지만 어제도 오늘도 진열대는 여전히 텅텅 비어있다.

공포가 지속되면 우리의 감정은 공포의 원인이 아니라 자신이 쳐한 상황에 굴복하게 된다. 자신을 때린 같은 반 친구보다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방치한 이 사회를 증오하는 것처럼 말이다.     

The Triumph of Death _ Pieter Bruegel(1562)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사람의 의지는 우리를 살게 하기도 죽게 하기도 할 만큼 강한 것이다. 수천 년 간 인류를 공격한 많은 재난과 전염병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인간은 모든 걸 극복하고 지금의 세상에까지 도착해 있을 만큼 강하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릴 지치게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모든 고통을 견뎌 낼 우리의 오늘 하루가 조만간 희망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줄 것임을 다시 한번 굳게 믿어볼 때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of God, which is why we call it the present.”    - Bil Keane (1922~2011)

(어제는 지나간 역사이고 미래는 수수께끼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present)를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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