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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Mar 29. 2020

마이 훼이보릿 띵

마이 훼이보릿 띵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던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 사랑과 함께 음악마저 잃어버린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게다가 엄마의 공백을 어떻게든 메워보려는 무뚝뚝한 아버지는 더 무섭게 아이들을 몰아붙이니 예민한 사춘기 남매들이 똘똘 뭉쳐 할 수 있는 일이란 애꿎은 가정교사들을 못살게 굴면서 아빠의 관심을 끄는 일 밖에 없었다.

수많은 가정교사들이 짓궂은 아이들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 폰트랩 家에 12번째 가정교사인 마리아 선생님이 찾아오면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1965년에 상영된 이후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사랑받은 이 영화는 4~50대의 대한민국 성인들에게는 추석, 설날, 성탄절 특선 영화로 10번 이상은 봤을 세기의 명작으로 여겨질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식탁 의자에 솔방울을 올려놓는 등 여전히 괴롭힘의 대상이었던 마리아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나약함을 보여주게 되는 계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천둥번개와 비바람이다. 세찬 비바람과 천둥번개는 여전히 낯설고 괴롭힐 대상인 선생님의 방문마저 두드리게 할 만큼, 아직 믿을 수 없는 그녀의 등 뒤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아이들에겐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안심시킨 마리아 선생님의 노래 한 곡이 있었다.     


My favorite thing (by Oscar Hammerstein II)     

 

 장미에 맺힌 빗방울과 아기 고양이의 수염

 빛나는 구리 주전자와 따뜻한 털 벙어리장갑

 끈으로 묶은 갈색 종이 꾸러미는

 몇 안 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크림색 조랑말과 바삭거리는 사과과자

초인종, 썰매 종소리와 국수를 곁들인 송아지 커틀렛

달과 함께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은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들


하얀 드레스에 푸른 띠를 두른 소녀들

내 코와 눈썹 위에 앉은 눈송이

봄이 되자 녹는 은빛의 새하얀 겨울은

몇 안 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개가 나를 물었을 때, 

벌이 나를 쏘았을 때, 

내가 슬플 때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지.


아무리 무섭고 어려운 일들이 우리 삶 속에 엄습해 있을지라도 엄마 아빠랑 함께 있는 것이 마냥 신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당신의 등 뒤에서 지친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안락한 소파, 회사 근처 식당처럼 강렬한 맛은 아니지만 가족이 모여 함께 먹는 정갈한 저녁식사처럼 소박하고 내 곁에 늘 있던 것들이 우릴 안심시킨다는 걸 지난 몇 달을 숨 죽여 지내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 알아채지 못했을 뿐 내 주변에 항상 존재했던 작은 기쁨들이 눈앞에 놓인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진 못할지라도 지속적으로 우릴 충전해준다는 것을 알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탑재하고 난생처음 겪어보는 경험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손을 놓고 공기가 정화되기만을 기다린 지 너무 오래다.

한 번도 이래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처음엔 당황하고 호전의 기미가 없으니 이내 절망한다. 때론 특정 지역에 전염병이 집중적으로 창궐했을 때는 우리 동네가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제부터 시작인 다른 나라들의 그래프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쉰다. 누군가는 앞장서서 공포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힘을 보태기도 하고 다들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국에 나만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것이 이기적이라 느껴지겠지만 원래 쉽게 두려워하고 쉽게 절망하고 어떻게든 혼자라도 살아남으려는 욕구로 가득 찬 게 인간이니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바람이 부는 창가에 촛불 하나 놓인 것 같이 불안한 상황이라서 언제 이 촛불이 바람에 밀려 커튼으로 옮겨 붙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남을 돕진 못하더라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전을 돕는 일에는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사태가 가져다준 것들이 무엇인지, 이 사태 이후에 바뀌게 될 모습들이 무엇일지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또 다른 기회를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너무 멀게 느껴져 오늘이 절망스럽고 밖에 떠도는 공기가 천둥번개보다 무섭게 느껴질 때, 그리고 지속된 긴장으로 온몸이 돌덩이 같이 느껴진다면 마리아 선생님과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훼이보릿 띵’을 떠올려 노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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