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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Sep 29. 2020

우리의 인생에도 갱신이 필요하다.   

갱신(更新) renewal : [명사]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함

  

물건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음식 역시 물건과 마찬가지로 유통기간으로 신선함을 표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것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 기능이 종료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새로운 쓰임의 시작이자 2.0으로 버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트북에 붙여놨던 스티커의 끝자락이 살짝 분리되어 있으면 계속 만지고 문질러 다시 붙이려 애를 쓰기보다 

얼른 떼어내거나 다른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기분마저 새로운 건 덤이다. 

날카로운 것에 다친 손가락에 붙여놓았던 밴드가 까매지거나 끈적거리는 것 또한 상처가 아물었다는 표시가 아니라 다시 소독하고 새것으로 갈아주라는 신호이다. 그때는 지체하지 말고 바로 교체해주어야 한다. 

조금만 힘을 주어 돌려도 부서지는 오래되어 녹슨 나사못,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전지를 제때에 교체해주지 못하면 나중에 부품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등 더 큰 공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정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흔히 연인들이 처음 사랑할 땐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것뿐인가?

갓 입학한 1학년 때의 마음이, 갓 입사한 신입 시절의 마음이 변질되고 희미해지는 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린 그동안의 인생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되물을 것이다.

그럼 자식이나 부모처럼 가족을 향한 마음도 변하느냐고.

사랑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우유가 상했다고 우유가 아닌 것이 아니듯이. 

단지 쓰임과 기능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쪼그맣고 귀엽던 아기 시절의 모습과 기억에 멈춰져 있다면 

폭풍과 같은 사춘기 시절을 견디고 있는 자녀를 대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언제나 나만 쳐다보고 어디에 가던 내 손을 꼭 잡던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가족과의 거창한 외식보다 편의점에서 친구와 먹는 컵라면을 더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불안해도 아이의 나이와 현 상황에 맞는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엿한 과장이 된 부하직원을 신입 시절의 기억만으로 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Renewal _ 흙, 유약, 혼합재료, 2008, 박기열作.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갖추어야 할 사랑의 형태와 기능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해서 매일매일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서운해한다. 연인과 가족, 친구의 현재 모습 속에 내가 기억하고 있던 예전의 그들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묵은 관습과 관계에 대한 아쉬움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선 마음이 변한 타인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달라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에게 나는 현재 어떤 모습의 자식인지, 언제나 손을 꼭 잡고 걷던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의 모습으로 비치어질지, 신입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선배들에게 현재 나는 어떤 모습의 베테랑이 되었는지 말이다. 그렇게 꼼꼼히 나를 관찰하다 보면 결심이 달라진 게 아니라,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맞춰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유를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는 없지만 잘 상하게 하면 풍미가 깊은 치즈를 얻을 수 있다. 

마시거나 목을 축이는 우유 본연의 역할은 아니지만 빵 사이에 끼워 넣거나 샐러드에 넣어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과 결심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그 감정과 결심을 어떻게 따라갈 것인지 고민을 하면서 감정의 변화에 몸을 맡겨보자. 그 감정들을 지금 당장 필요한 기능들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아까운 우유를 싱크대에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변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변화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당신의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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