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들춰보며 추억이 되고 미소가 되는 지난 시간들도 있지만, 덮어두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도 있습니다.
덮어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닐까요?
마주하면 마음이 아프고 상처가 다시 떠올를까 봐 두려운 건 아닐까요?
그런데 용기를 내어 마주하고 다시 이름표를 붙여주는 재해석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과거가 다른 의미가 됩니다.
덮어두어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버리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더 멋지게 비춰주는 거울이 됩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질문을 통해 과거를 마주해 보니 특별하게 더 와닿는 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가족에 대해 돌아보며 장녀라는 부분을 생각하는 글을 통해 장녀라서 더 좋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에 비해 작고 자연스러워서 의미부여를 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남아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후 K-장녀라는 말이 나오며 전문가의 강의도 많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장녀라는 위치가 좀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장녀라는 위치를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전문가의 말을 듣고 보니 오히려 어려운 자리였다는 게 느껴져서일까요.
그런데 이번에 장녀라서 제가 갖게 된 장점들을 생각해 보니 장녀가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만큼 지금 저에게 너무 필요한 성격과 스타일이 모두 장녀라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과거는 장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화가'라는 어릴 때의 꿈인 것 같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디자이너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어릴 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화가라는 직업은 다른 길이긴 하지만요.
나만의 창작의 길을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라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디자인을 하면서 어려울 때에도 '화가'가 되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릴 때의 꿈이자 앞으로 미래의 꿈이기도 한 '화가'는 지금 제가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시작이 되었고 현재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 계산 없이 내가 하고 싶어 했던 '화가'라는 꿈을 저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유지하고 싶은 과거입니다.
내가 지나온 과거를 덮어두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냥 살아온 시간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이름표를 달아준다면 특별한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 중에 꼭 필요한 안경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거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면 긍정의 안경을 끼고 재해석해주어야 합니다.
너그럽게 과거를 수용하고 다시 바라보아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과거를 재해석하는 능력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내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도 곧 과거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