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수업이 끝난 후 귀가하면서 유튜브를 열었다. 가장 눈에 띄는 영상은 "한국 정부, 답변 없어 유감"...표기 정정 요구한 타이완 [지금이뉴스]"이라는 제목의 YTN 보도영상이다. 기사의 내용은 '대만 외교부가 최근 대만 여행객 신고를 접수했는데,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의 출발지와 다음 목적지의 항목에서 대만이 "중국(대만)"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한국 정부에 정정 요청을 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이 없어서 유감이다.'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2025년 초부터 외국인이 온라인으로 입국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는 '전자입국신고제'를 시행했는데, 해당 사이트에 앞서 언급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대만 외교부와 현지 보도 내용을 통해 문제 제기가 된 부분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YTN 보도에서 언급된 것처럼,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자입국신고서의 (1) 출발지와 (2) 다음 목적지 항목에서 '국가'를 선택할 때 'CHINA(TAIWAN)'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면, 개인 정보를 입력하는 항목에서는 'TAIWAN'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리곤 대만과 중국의 국호 표기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의 스크린샷을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전자입국신고서 국가선택 항목 스크린샷 내용]
중국: CHINA P. R.
홍콩: CHINA P. R.(HONG KONG)
마카오: CHINA P. R.(MACAO)
대만: CHINA(TAIWAN)
대만의 국호는 중화민국(中華民國), Republic of China (ROC)이고,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 People's Republic of China (PRC)이며, 해당 항목에서 CHINA와 CHINA P. R. 로 두 개로 분리하여 표기했기 때문에, 표기된 명칭만 봐서는 대만(중화민국)이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 다기보다 분리되어 보일 수도 있고, 표기된 CHINA는 ROC(Republic of China)로 해석할 여지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대만이 'CHINA P. R. (TAIWAN)'으로 표기되었거나, 혹은 대만과 중국 모두 구분 없이 ‘CHINA’로 되어 있었다면 명백히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표기 방식만으로는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의문점이 든다. 대만 사람들이 대외적으로 '대만(타이완)' 명칭을 선호하지만, '대만'은 지명이며 공식 국호는 중화민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만 정부 부처의 홈페이지에서도 스스로를 Republic of China(Taiwan)이라고 표기한다. (대만 국적기 중화항공의 영문명도 China Airlines이다)
이전에 썼던 "대만(타이완)이냐 중화민국이냐)https://brunch.co.kr/@josephkim/9"에서 언급했듯이, 대만 사람들 스스로도 이러한 명칭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만이다’, '중화민국이 대만에 있다', '중화민국대만', '대만은 중국(중화민국)이다'와 같은 견해가 있으며, 정체성에 대해서는 '대만 사람이다(台灣人)', '중화민국 사람이다(中華民國人)', 혹은 '대만인이자 중화민국 사람이다(是台灣人、也是中華民國人)'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따라서 대만 사람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여 스레드에 접속해 보았는데, 그 분위기는 매우 혼란스럽고 격앙된 듯 보였다.
관련하여 대만 언론사들의 보도가 몇 차례 있었고, 전자입국신고서 홈페이지 스크린샷을 첨부했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에 "CHINA(TAIWAN)"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은 따로 "CHINA P. R."로 표기했다는 등 상황을 상세하게 풀어주는 기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신문 기사를 보는 대만 독자의 눈에는 오로지 한국의 전자입국신고서 홈페이지에 "CHINA(TAIWAN)"라고 되어 있다는 사실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스레드 혹은 페이스북에서 봤던 것 중에는 내가 가졌던 의문점을 언급하며, 'CHINA P. R. 과 CHINA가 분리되었다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우리의 국호가 중화민국이니 CHINA P. R. 과 분리된 CHINA는 중화민국(약칭 중국)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이 오히려 우리의 국호를 잘 분별한 것이다', '문제는 없어 보이나 ROC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등 크게 문제는 없다는 의견 또한 일부 존재했다.
그러나 격앙된 민심에는 자극적인 단어만 눈에 들어올 것이며,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CHINA P. R. 과 CHINA의 분리 여부와 상관없이 'CHINA'라는 단어가 대만에 붙은 그 자체로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도 냉전 시기에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중화민국, 즉 대만을 뜻하기도 했으며, '자유중국'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표기가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대만과 중국을 분리하려 했던 의도였는지, 혹은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문제 제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나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해당 홈페이지에서 개인 정보 입력란에는 "TAIWAN"으로 표기하고, 문제가 되는 항목에서는 CHINA P. R. 과 CHINA로 분리한 것으로 보아, 중국과 대만이라는 두 국가를 구분하려 했던 의도는 있었던 것 같다.
내 의견과 상관없이, 대만 사람들의 격앙된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번 사안이 의도와 상관없이 '대만이냐 중화민국이냐'라는 여전히 논쟁적인 화두에 불을 붙인 것은 명확해 보인다. 아울러 대만 외교부의 정정 요청에 한국 정부가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고(韓國政府迄仍未正面回應) 하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해당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