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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건니생각이고 Feb 22. 2019

같은 공간, 다른 느낌

집에 대한 인식 차이 그리고 육아.

 문득,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 결혼 후 아내와 둘이 살게 된 집, 딸의 출생으로 세 식구가 살게 된 집 모두 같은 '집'이지만 제겐 그 느낌과 의미가 다르더라고요. 우선, 결혼 전의 집은 전적으로 부모님의 관리하에 있었기에 제 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공간'이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굳이 집을 나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던 걸 보면, 집이라는 공간에 온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결혼을 했고, 결혼으로 인한 분가로 집은 달라졌습니다. 집이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붓한 공간'으로 둔갑한 거죠. 오붓함에 과하게 빠진 나머지, 결혼 전 약속했던 '산책 가기'마저 뒤로 미루다가 아내의 원망을 듣기도 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쉼'의 공간이던 집은 '놀이 공간'으로 한 번 더 진화했습니다. 좋게 말해서 놀이 공간이지 사실 치우는 자와 어지르는 자의 전쟁터라 할 만큼 '치열한'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집에서의 '쉼'을 바라는 건 부모에게 사치인가 싶었죠.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이 없었다면 이 변화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내에게 집은 어떠한 공간일까?


 궁금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분명 다른 느낌일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서로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대화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집에 대한 인식 차이가 가사분담을 비롯한 집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겠다는 사실을 말이죠.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여보한테 집은 어떤 공간이고, 어땠으면 좋겠어?"
"나에게 집은 ‘일터’ 같은 공간이야.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특히 그렇고. 오빠가 퇴근하고 함께 집에 있어야 비로소 쉴 수 있는 조금의 여유가 생기거든."


 집이 일터라는 대답에 당황스러웠지만, 육아로 ‘출근’이 사라진 지금 아내의 상황을 생각하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집안일만 해도 산더미인데 아이까지 돌봐야 하니, 제가 출근하고 난 뒤의 집은 일터였던 겁니다. 아내도 집에서는 쉬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집을 일터라 생각하고 ‘일’하고 있었던 겁니다.


© jarson, 출처 Unsplash


"오빠는 집이 어땠으면 좋겠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


 집이 눈치 볼 필요 없는 '우리만의 공간'으로 변모하니, 쉬고 싶은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한 번 앉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리클라이너 때문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제가 바라는 집은 애초에 '쉴 수 있는 공간'이었나 봅니다. 휴일에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그저 집에서 원 없이 쉬며 보내곤 했습니다. 적어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 tjsocoz, 출처 Unsplash


 몰랐습니다. 새 식구가 가져올 '집'의 변모를 말이죠. 하긴, 당시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미리 준비가 안 된 탓일까요? 집은 새로운 생명체를 맞이하자마자 즉각 변했지만, 전 그대로였습니다. ‘휴식 공간’으로서의 집을 고집하고 있었던 겁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원하는 휴식 공간으로의 집을 채 몇 달도 즐기지 못했는데, 순식간에 집은 잠조차 맘 편히 잘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리고 만 겁니다. 그렇게 새 식구를 맞이한 집을 사이에 두고, 마냥 쉬고 싶은 아빠와 마냥 쉴 수만은 없는 엄마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시작됐습니다.


일터 하나 추가요~


 저의 일터가 회사인 것처럼 전적으로 육아를 책임지는 아내의 일터는 집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귀가 후 휴식을 바란 제가 어리석었죠. 안 그래도 할 일이 산더미인 집인데, 육아까지 더해지니 휴식은 어림없었습니다. 가사 논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 차이였던 겁니다. 마냥 쉬고 싶은 공간인데 자꾸 이것저것 해야 하니 늘 수동적이었던 저였습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고, 집을 ‘일터’라고 생각하니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집은 다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오리란 믿음으로 아쉬운 마음은 일단 달랬습니다. 쉬고 싶지만 쉴 수 없었던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니 너무 미안했고, 그 와중에 쉬고 싶은 제 맘을 이해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지금은 일터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일터가 더 생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집이라는 새로운 일터는 일터이긴 하지만 너무나 행복 가득한 일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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