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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랑 Jun 01. 2023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오고,

올봄에 가장 잘한 일

아파트를 떠나 작은 타운 하우스로 이사 올 때 아이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고 나는 작은 뜰을 갖는 게 소망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에 뜰 안의 많은 식물들이 얼어 죽었다.

8년 전 이사 오면서 심었던 에메랄드 그린과 아기단풍나무에도 무척 가혹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길목에도 잎은 말라있고 밑동의 줄기는 영양실조에 걸린 다리 같아 보고 있으면 애달프다. 그 아래 뒹구는 마른 단풍잎들이 작년 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없이 쓸쓸한 풍경들이다. 3월 초까지 돌보지 않은 작은 뜰에 봄은 저만치  서 있었다.


멀리 있는 엄마가 마당에 핀 목마가렛을 찍어 보냈다. 작은 꽃잎 하나를 확대해서 보고 있는데 오밀조밀 모여 핀 모습에 기분이 금세 좋아진다. 꽃은 보고 싶지만 정원일엔 한없이 게을러지니 큰일이다.

2월과 3월은 봄의 정원을 위해 가장 바빠져야 했지만 올봄도 다른 일들에 치여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러다가 또 봄이 다 가겠구나 싶어 조급증이 밀려왔고 다음 해 봄을 기다리기엔 인내심이 부족했다.

올봄을 위해선 뭔가 결단이 필요해 보였다.


코로나로 멈췄던 꽃 시장은 올봄 두 배의 활기로 일렁였다. 맑은 날, 구름 낀 날, 비 오는 날 상관없이 여러 번 꽃 시장 문턱을 넘나들며 문그로우와 화이트 핑크 셀렉스, 그린라이트 수국과 백일홍, 사피니아, 꽃잔디를 심어놓고 따뜻한 봄이 어서 다가이 와주길 기다렸다.

올봄에 내가 가장 잘한 일들이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은 마당과 집 주변의 터를 포함해 1000평이 넘는 광활한 곳이었다. 깨꽃이 피던 밭을 용도변경해서 집을 지었기에 주변보다 지대가 높았고, 대문까지 어린 내 걸음으로는 한참이 걸렸다. 나의 첫 유년의 뜰, 그곳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꽃들이 번갈아 피고 화사한 봄 햇살이 마당 가득 오래 머물렀다. 엄마는 호미 하나로 매일 마당의 풀을 뽑고 계절 꽃들을 바꿔 심으셨다. 어느 날, 출근하던 아빠가 엄마의 호미를 저 멀리 풀밭에 던지며 화를 내던 날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보통 대문을 활짝 열어두었기에 꽃들이 핀 동선을 따라 동네분이나 낯선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있었다. 꽃이 지지 않는 언덕 위 하얀 집으로 소문이 났을 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메리골드와 코스모스, 수레국화가 집 주변으로 가득 에워싸며 유난히 예뻤던 어느 가을날엔 kbs 단막극 촬영 장소로 내주기도 했다.

잘 가꾸어진 엄마의 정원을 바라볼 때면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사서 고생하는 고상한 취미 정도로 여겼다. 피어난 꽃들에 감탄하고 예뻐할 줄만 알았지 엄마의 고되고 외로운 노동의 무게에는 가족 모두 무심했다.

도심으로 이사를 결정할 때 우리는 엄마의 정원을 두고두고 아까워했지만 정작 엄마는 큰 미련이 없어 보였다.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말을 엄마는 그때 이미 몸소 이해했던 걸까..




4년 전 엄마는 다시 고향 근처로 내려가셔서 집을 지으셨다.

예전에 비해 작고 아담한 정원과 텃밭이지만 이제 젊지 않은 엄마가 혼자 그곳을 가꾸는 게 마음에 걸린다.

오늘도 엄마는 봄의 고랑을 파느라 전화기 너머 저편에 있다. 이제 조금만 무리하면 방광염이 오는 엄마에게 쪼그려 앉지 말라고, 풀대기들 심지 말라고, 그냥 전부 꽃씨 뿌려 놔두자고 말해봤지만 대답뿐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아프다는 소리 벼르는 못된 마음, 밤새 혼자 아파 끙끙댈 엄마를 생각하며 미리 잔소리하는 내가 싫어진다.

올봄 아빠가 심어놓은 자두나무,사과나무에 하얀 꽃이 활짝 폈다. 예쁜 꽃을 보고도 자주 우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겨우 호미질로 견디는 중임을 알면서도 쉴틈 없는 엄마의 봄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아도 엄마의 봄은 쉬는 법 없이 또 피어나는구나..


엄마의 정원 2023.5


아파트를 두고  뜰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잘한 결정이라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은 엄마였다.

대신 꼭 감당할 수 있는 작은 크기로 나의 뜰을 시작하라고 당부하셨다. 당시엔 엄마 말이 서운하게만 들렸는데 작은 정원을 한눈판 사이 쑥대밭으로 만드는 잡초들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감당되지 않는 삶을 살 때 좋아하는 일도 쉽게 지치고 꾸준히 오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엄마는 알고 계셨다. 좋아하는 일이 고된 노동이 되지 않고 기꺼이 즐거운 취미가 되어 오래 해내가기를 바라셨던 거다. 올봄 너무 많은 계획들로 힘에 부치는 시간들을 보내고서야 깨달았다.

계절 안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선 씨앗의 시간도, 흙을 가꾸는 시간도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는 카렐 차페크의 좋아하는 문장을 붙들고 4월과 5월을 보냈다.


바쁘게 돌아가던 나의 시간에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시간이 아닌 계절 안에 머물고 있다. 새벽 기상 500일 아침, 조금 더 단순하고 심심하게 살자는 새로운 주문을 넣고 빽빽했던  일정들을 하나둘 지워냈다.

갑자기 무리에서 이탈한 느낌에 가끔 적막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고요하고 단정해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맘에 든다.

5월의 맑은 바람과 눈부신 연두색의 봄 산책이 참 좋았다. 요즘 매일 구름처럼 새롭게 장미들이 피어나고  달맞이꽃 향은 멀리 달아나려는 마음을 정원에 머물도록 다시 붙잡아둔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잠깐 넋 놓고 살았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봄엔 봄의 일을 하면서

나를 지키기 위한 행복한 순간들을 더 많이 챙기고 싶다.


#봄이한일#임태주#시의문장들#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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