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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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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Sep 05. 2023

39. 입맛에 대하여

최근에 유튜브 <우리 동네 어린이 병원>이란 채널에서 편식에 대해 QnA를 하는 2부짜리 영상을 봤다. 나도 우리 아기 편식에 고민이 있고 식사량이 들쑥날쑥한 게 스트레스받는 일이라 하나하나 메모하면서 하나씩 의문을 풀어나갔다.


많은 고민들과 그에 대한 답변들이 나왔고 그중 나에게 도움이 된 부분을 고르자면 이러하다. 아기가 채소 편식을 시작하는 이유는 성인보다 미뢰가 많고 특히 쓴맛을 느끼는 감각이 성인의 3배나 된다. 그래서 쓴맛을 거부하는 것이다. 음식 섭취는 식품군에 따라 적당량을 적절히 먹으면 되고 조리법에 따른 흡수율 차이는 있으나 의미 있는 정도는 아니므로 아기가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면 뭐든 괜찮다. 식사 때 먹지 않으면 간식 때 주어도 된다. 꼭 덩어리 음식을 크게 먹을 필요는 없고 취향의 차이이므로 잘게 잘라주어도 된다. 안 먹는다고 며칠 굶기지 말고 다양하게 먹이지 않는다고 너무 집착할 필요 없다.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자면 식사의 목적은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고 가족들과 식사시간을 즐기는 데에 있다는 것이었다. 억지로 먹이려 하지 말고 잘 먹이겠다고 굶기지 말고 경험을 시켜주되 아기가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란 것이다.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니 우리 아기는 아예 안 먹는 아기는 아닌 듯하다. 기본적으로 먹는 즐거움을 아는 아기고 다만 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먹는 양이 크게 들쑥날쑥해서 내 마음을 졸이게 하는 것뿐이다. 어제는 세 수저만 먹고 안 먹겠다고 버티다가도 오늘은 조금 넘치는 양을 다 먹고도 더 달라고 하는 식이다.


식감에 따라서도 선호도가 분명하다. 우리 아기는 부드럽고 촉촉해서 혀에 걸리는 게 없는 식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조금 질기거나 딱딱하거나 혀에 바로 맛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대로 뱉는다. 그래서 많은 아기들이 좋아한다는 블루베리도 갈아진 건 먹지만 통째로 주면 겉껍질에서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뱉는다. 귤도 껍질째 주면 안 먹고 껍질을 살짝 까서 그 안의 과육이 살짝 느껴지면 먹는다.


바삭한 식감도 좋아한다. 여태 떡뻥을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이제 떡뻥은 시시해서 아기 웨하스 같은 것도 먹인다던데 나는 여태 떡뻥을 좋아하니 굳이 과자의 단계를 업그레이드해 줄 생각은 없다. 딱딱한 건 안 좋아하는데 바삭한 건 좋아해서 멸치볶음 같은 걸 괴자처럼 해주면 아주 잘 먹는다.


새콤한 맛을 좋아한다. 단맛보다도 신맛을 더 선호한다. 백김치나 김무침 같은 것도 식초의 새콤한 면을 좋아한다. 그래서 과일도 딸기, 귤, 키위, 자두같이 신맛이 나는 과일을 다른 과일보다 더 좋아한다. 수박, 멜론도 썩 달지 않은 것을 골라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단맛으로 먹는다기보단 촉촉한 맛으로 먹는다. 그래서 오이도 제법 잘 먹는다.


딱딱한 것은 영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잘 먹는 과일도 사과, 배, 참외 같은 건 몇 조각 먹진 않는다. 동결건조된 것이나 좋아한다. 동결건조는 바삭한 식감이어서 그런지 껍질이 질겨서 좋아하지 않던 생토마토도 동결건조된 것은 잘 먹는다.


고기나 생선 먹이는 것이 참 어렵다. 생선은 아예 안 먹고 고기는 아직도 다짐육 아니면 안 먹는다. 그나마 오징어나 전복, 새우는 부드러워선지 잘 먹는데 이제 수산물이 먹기 어려워지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토록 거부하던 계란을 이젠 스크램블로 해주면 먹기 시작했단 점이다. 반찬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채소류는 무, 애호박, 양파, 당근 같은 기본적인 건 가리지 않고 먹는다. 부드러운 버섯은 아주 잘 먹고 두부도 종류 상관없이 잘 먹는다. 나물류는 국에 넣어주면 잘 먹는데 반찬으로 먹으면 한 달 전부턴 거의 거부한다. 감자, 고구마는 잘 먹고 옥수수는 아직도 그 알갱이가 별론가보다 썩 좋아하지 않는다.


유제품은 유난히 좋아한다. 우유는 아직도 자기 전 종종 찾을 정도로 좋아하고 요구르트 치즈는 냉장고에서 보기만 해도 꺼내달라고 난리다. 좋아하니깐 아직 뭔가를 첨가해서 달달하게 준 적은 없다. 가끔 두유도 먹이는데 컨디션에 따라서 알레르기가 올라올 때가 있어 조심스럽다.


고소한 맛도 잘 안다. 고소한 건 맛이 아니라 향이긴 하지만. 들깨국을 해주면 잘 먹고 두유도 무가당으로 주는데 그런 이유로 잘 먹는 듯하다. 아몬드도 딱딱해서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잘라진 것을 주면 오독오독 잘 먹는다. 호두도 잘 먹는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아기의 취향은 생각보다 분명했다. 골고루 먹여야 한단 압박감에 내가 잘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조금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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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약간 시기가 고민되는 것은 음료나 아이스크림 같은 시판 간식류다. 먹여봐야 썩 좋은 거 아니란 걸 알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건 왜일까. 이미 어린이집에서는 바나나킥 먹는 사진도 봤는데 아직 내 손으로 쥐어준 적은 없다. 아직도 떡뻥과 동결건조 과일이 내 최대치다.


오늘은 동결건조 과일이 사던 곳에서 아기용 매실차가 나왔길래 한번 사보고 싶어서 조금 드릉드릉했다. 그런데 라이브방송 판매자가 마시고 딱 했던 첫마디가 “달달하네요.”여서 접었다. 아직 음료는 어린이집에선 먹어봤지만 집에선 안 먹여봤다. 마른 편이라 비만이 걱정되진 않은데 과일 외의 단맛엔 아직 너무 익숙하게 두고 싶진 않다. 그래서 과일도 제한 중인데 음료라니. 약국에 가면 아기 눈높이에 맞게 파는 온갖 종류의 음료들을 이제 아기가 맛있는 거라고 눈치채서 달라고 하는데 애써 외면하는 중이다.


그런데 외출할 때 간식은 내게 약간의 자유를 주는 무언가여서 가방에 항상 바나나, 동결건조과일은 세트처럼 가지고 다닌다. 아기도 이제 그런 눈치가 빠삭해서 수시로 내 가방을 뒤져보거나 ‘주세요’ 손짓을 한다. 간식으로 달래는 게 좋은 습관은 아닌데 공공장소에서 떼쓰거나 버티기 하는 아이를 이더 위에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하고 있는 게 진 빠져서 자꾸 편법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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