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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두두 Nov 07. 2022

24살, 아이가 생겼다.

12년만에 전하는 축하 메세지

처음, 또는 몇번 만난 이들과의 대화 속 레파토리를 늘 예상한다. 그리고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애기가 있어요.?”

“네.”

“애기가 몇살이예요.?” 

“12살이요.”

“12살이요?? 우와 엄청 일찍 결혼하셨나봐요.”

“네.하하”


참 별 내용 없는 대화인데도 늘 이 대화에서 나는 뜨끔한다. 늘 빠지지 않는 ‘일찍’이라는 단어 때문. 도둑이 제발 저린다지. 간혹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왜 이렇게 일찍 결혼하셨어요?" 라고 덧붙이는 질문에 “하하 그렇게 됐네요.” 라고 대답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24살 여름, 아이가 생겼다.

속도 위반이라고들 했다. 이후에도 아이가 생겨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에 아이가 생긴건 내가 처음이었다. 처음은 늘 특별하지.

세상에 100%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엄청난 비율의 확률도 믿으면 안된다는걸 그때 깨달았다. 아이와 우리는 운명이었다. 그 어떤 확률도 깨버리고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운명. 물론 처음부터 운명이라 받아 들이진 못했다. 첫만남이 너무 강렬했기에.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마음이 이상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고등학생 커플 영주와 현이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원래도 감정 과잉 인간인 내가 그 에피소드에선 더욱이 온갖 등장 인물들의 감정에 동요되어 그 누구의 편도 들 수가 없었다. 금쪽 같은 새끼들이 (심지어 전교1,2등이라는 캐릭터 설정이라니) 고생길을 걸을까봐 반대하던 그들의 아버지 인권과 호식에게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철 없는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영주와 현이가 아이를 지키겠다는 마음에도, 다정한 그들의 모습을 걱정과 함께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던 춘희와 옥동에게도.

그들보다 조금은 희망적(?)이었던건 성인이라는 점이었을까. 하지만 나 또한 아직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했던 나이였다. 이제야 뭔가 잘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을 때였다.


남편과 난 같은 학년 CC였다. 남편은 두살 많은 복학생이었다. 스물두살 나이에도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걸. 2년 반의 연애는 날 분명 성장시켰다. 졸업을 앞둔 그 해 봄, 졸업 작품 상영회에서 나의 부모에게 가벼운 첫인사를 했다. 그 서글서글하고 다정한 얼굴로.

두번째 만남은 집 앞 선술집이었다. 두어달 전 가볍게 인사를 했던 남자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해주는 걸로 둔갑한 자리였다. 나의 부모는 그저 스쳐가는 딸의 남자친구 중 하나일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몇시간을 겉도는 이야기들만 뱅뱅 하다가 애주가 아빠가 술 한 잔 입 대지 않는 날 보고 한 말이 우리의 입을 열게 했다. “넌 왜 안마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일주일이 되도록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것을 술 한잔을 핑계 삼아 겨우 내뱉았다.


“나 임신했어.”


인권과 호식이 하늘이 무너진 것 마냥 울며 좌절하는 모습에서 분명 나의 엄마, 아빠를 봤다. 졸업을 앞두고 어떤 날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날아갈까 싶었던 부모의 기대를 한마디로 무너뜨렸다. 엄마는 주차장에서 주저 앉았고, 아빠는 두번째로 본 나의 남친, 현 사위를 택시 태워 보내버렸다. 그리고 4개월 후, 졸업을 3개월 앞두고 난 봉긋한 배를 화려한 드레스에 감추고 결혼했다.

이른 결혼을 앞두고 엄마가 본 사주에서 “일찍 결혼하면 이혼한다” 라는 말을 들었지만, 다행히 아직까진(?) 이혼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기필코 하지 않으리라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하)

이따금씩 “일찍 결혼하길 잘했지?” 라고 장난 섞인 말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다신 그 집앞 선술집엔 가지 않으며, 가끔 그 가게 앞을 지나기라도 할때면 모두가 조용해진다.


다시 돌아와 [우리들의 블루스]

부모와 아이들을 오가며 감정 널뛰기를 하던 내가 붙들고 있던 감정의 끈을 놓아 버린 씬.

징검 다리 위에서 마주친 선아와 영주. 학교 체육복을 입은채로 배가 봉긋 나와있는 영주를 보고 처음 만난 선아가 물었다. 임신 했느냐. 배를 만져 봐도 되겠느냐. 그리고 정확히 영주의 눈을 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한 말.


“축하해요.”


나 또한 얼마나 듣고 싶었는가. 축하해.


축하 받지 못한(할) 임신. 한 친구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 “애 뱄나.” 라는 말을 머뭇거리며 주는 나의 청첩장 위로 내던졌다. 비록 축하 받는 임신은 아니었지만, 나의 아이는 처음이 가져다주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말 흘러 넘치게도 가득히.


살면서 축하 받는 임신을 못해본건 좀 아쉬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 또 한 내가 선택한 일이고 그렇다고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해본다. 주변인들의 임신 소식이 들려 올때면, 난 누구보다도 축하한다는 말을 진심으로 전달한다. 얼마나 축하 받을 일인가. 이 세상에서 딱 우리를 골라 찾아온 생명이라니.

하지만 마음 구석탱이에 미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크나큰 결심을 했지만, 나조차도 축하해주지 못했던 그때. 지금에서야 할 수 있겠다. 지난날의 나에게.



축하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그 결심을 축하하고 응원해. 
앞으로 쉽지 않겠지만 그것 또한 네가 결정한 일이니
이겨내는 것도 네 몫일테야. 세가족이 된걸 너무나도 축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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