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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두두 Mar 04. 2023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무기력이 사라지고 활력이 생긴다고? 일단 go!



ADHD를 확신으로 굳힌 결정적인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이건 차차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일단 다른 효과는 모르겠고, 무기력하고 활기가 생겼다.


ADHD랑 무기력이 무슨 상관이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날 병원으로 이끈 결정적인 ADHD 치료 후기였다. 오랜 우울과 불안이 사라지고 날 찾은건 무기력이었다.(어떻게 이렇게 중간이 없냐) 아이러니하게도 우울할 땐 활력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했기에,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자기 전까지 눕는 일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우울과 불안이 사라지자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누워 있는게 가장 행복하다는 남편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다니! 매일 누워 있던 남편에게 타박 줬던게 미안할만큼 요즘 침대는 내 차지다.

눈에 보이는 아웃풋들을 내는 일들을 하다 보니 남들이 보기엔 부지런해 보였으나,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에 한해서였다. 그 외의 것들엔 대부분 시큰둥하고 무심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밥 먹고 눕는건 일상이 되었다.역류성 식도염도 얻어버렸네! 뭐…밥을 먹으나 안먹으나 틈만 나면 누웠다. 폭식이 사라지면 살도 빠질 줄 알았는데, 움직임이 극도로 줄다보니 빠지긴 커녕 5-7키로 늘어난 상태다. (식탐도 사라지고 먹는 양도 엄~~~청 줄었는데, 조금 억울하다! ) 늘 졸렸다. 어떤 날은 아이가 학교에 간 다음, 다시 잠들어 하교 할 때 깨기도 했다. “엄마 이제 일어난거야?” 라는 아이의 말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내가 활력만 찾아와도 생활이 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ADHD 확진을 받고, 약을 먹어야만 얻을 수 있는 효과였다. 그렇다면 나…ADHD이길 바래야 하는 건가!






의사와의 첫만남이었다.

병원 이름에 ‘공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에 타박이 아닌, “아 그랬군요~”라고 말해 줄 것만 같은 이름.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한 따스한 공감 같은건 없었다. 꽤나 무미건조했던 첫번째 진료.


-어떤 문제로 오셨나요

-ADHD인가 싶어서요. 진단을 좀 받고 싶어서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뭐 실수하고 덜렁대는건 기본이고, 잃어버리고, 떨어뜨리고, 깨먹고, 그리고 자주자주 깜빡해요.

-ADHD는 히스토리가 중요한데, 어릴때도 그랬나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ADHD란, 신경 전달 물질 이상으로 인해 전두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선천적인 만성질환

이므로 어린 시절부터 지속이 되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선생님은 상담에서 많은 것들을 물으셨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


-음.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럼 어릴 때 주변의 평가는 어땠나요. 부모님이라던지, 학교에서 생활 통지표에 ‘주위가 산만하며’ 이런 글이 써있었다던지.

-생활통지표는 기억이 안나는데, 엄마는 저한테 욱한다. 덜렁인다. 꼼꼼하지가 않다. 라고 말하셨어요.

그 이후의 질문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했던 때가 있었나요?

-산후 우울증은 있었나요?

-죽고 싶다란 생각을 한적이 있었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난 우울증이 아닌 ADHD로 온건데?

과거엔 우울이 지배했으나, 현재는 그때에 비하면 매우 평온한 상태이며 오히려 무기력에 가깝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의 질문에 과거의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우울과 무기력을 맞바꾼 사실도 병원에서 돌아와 되짚어보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성인 ADHD의 70-80%가 우울장애,불안장애,섭식장애,중독장애,수면장애 등의 공존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병원을 찾아 치료 중에 ADHD를 함께 발견하는 경우도 흔치 않은 경우라고 한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선생님은 ADHD를 판단하는 큰 부분에서 심리 상태도 크기 때문에, 과거엔 ADHD가 의심되나 현재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객관적인 지표로 진단을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CAT(종합 주의력 검사)를  추가로 받기로 했다. 검사비는 비보험으로 10만원. 지금 알아서 다행이다. 추가 검사비가 얼마인지 알았다면, 난 아마 병원에 오지 않았을테다. 모르는게 약일 때가 있다.


‘엇…? ADHD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ADHD가 아니면, 확신에 가득 차 있던 남편에게 큰 소리 칠 수 있는건가? 그러면? 그 다음엔? 내 활력은 누가 찾아줘?'





이런 걱정은 검사 시작과 동시에 사라졌다.

방금 문제가 뭐였지? 문제가 나오는 화면과 동시에 간호사 분이 설명을 하시며 검사가 시작되었다. 간호사 분이 나가셨는데 문제가 기억이 안난다.(다시 되돌릴순 없는거죠…?) 분명 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내가 가물가물하게 기억한 문제가 맞았다. 30-40분 간의 검사가 끝났다. 무진장 지루하고 몽롱했다. 집중을 요하는 검사임을 아는데도, 중간중간 내가 느낄만큼 정신이 후딱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했다.



“성인 ADHD가 맞네요.”



다행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점수가 높았다. 검사 결과를 보며, 드디어 내가 가졌다고 확진받은 이 질환 때문에 나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기력를 물리치고 활기를 가져다 준다는 그 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주책 맞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냐. 눈물을 뚝뚝 흘리다 눈 앞에 보이는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았다. 이 방에서 우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무미건조한 선생님은 티슈를 뽑아 주시진 않는구나. 그 방을 나오며 병원 이름에 있는 ‘공감’에 대한 기대를 놓기로 했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들어~~


계속 눈물이 차올라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고갤 들고 진료비를 수납했다. 사연있는 사람 마냥.

날 울린건 ADHD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불편함들과 어떻게든 노력해도 안되던 것들로 내가 스스로를 미워하고 혐오한 시간들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이 이런 이유 때문이라니. 안도감과 함께 억울함이 아주 맛있게 버무려 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아! 아주 탓하기 좋은 날씨다.  뇌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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