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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May 20. 2019

평화로운 아침, 작은 빡침의 과학

커피잔을 들고 걸어가면 반드시 넘칩니다. 반드시요

러시아의 루슬란 크레체트니코프, 한스 마이어

Rouslan Krechetnikov (RUSSIA) and Hans Mayer (USA)




왠일로 눈이 일찍 떠진 날입니다. 간만에 샤워도 오래 하고, 옷도 한참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있네요. 원래는 정신없이 학교로 뛰어가지만, 오늘은 상쾌한 기분으로 집앞에서 커피를 삽니다. :)


룰루


그런데 꼭 이런 날 안하던 짓을 해서 걸어가다가 커피를 엎지르죠. 차려입은 옷이 얼룩덜룩해진 꼬라지가 볼만 합니다. 내 인생이 다 그렇죠 뭐....


출처 : FC Bayern München


이제 우리 이럴 때 스스로를 탓하지 맙시다. 2012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의 대학원생 한스 메이어와 루슬란 크레체트니코프 교수가 '어쩔 수 없다고' 정신승리 할 수 있는 이유를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한스메이어와 루슬란 크레체트니코프 교수

이분들은 간지나는 수염만큼이나 임팩트 있는 연구결과를 세상에 발표합니다. ‘융합’이 대세가 된 시대, 유체역학과 생체역학의 콜라보레이션 결과를 세상에 내놓아 상까지 받죠.


<실험 방법>

1. 사람들에게 커피를 손에 들고 앞으로 자연스럽게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2. 느리게/빠르게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3. 커피잔에 신경을 쓰고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4. 커피 따위 신경 쓰지않고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5. 이 모든 장면을 초당 100장으로 찍는다.


커피는 컵 안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앞뒤로, 양옆으로, 위아래 위위아래, 그리고 빙글빙글 회전하게 될텐데요. 우리가 커피를 쏟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앞뒤방향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커피가 넘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커피를 들고 그냥 걸으면 반드시 쏟습니다, ‘10 걸음 안에’


멈춰있던 사람이 걷는다고 하면, 사람은 점점 빨라지다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떨 때 쏟아질까요?


속도가 빨라지면 커피가 잘 쏟아질까요? 속도가 빨라질 때, 커피의 위아랫 방향 흔들림이 늘어납니다. 사람이 걸어갈 때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커피잔 안 커피는 위아래로 웬만큼 흔들리지 않고서야 넘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커피를 쏟는 상황은, 커피가 앞뒤 방향으로 흔들리다가 훅 넘어가버리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속도만 놓고보면 사실 큰 상관은 없어요.



앞뒤방향!

그런데 특이한 점은, 커피가 넘치게 하는 '앞뒤방향 움직임'은 이것과 다른 경향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앞뒤 방향 움직임은 속도가 아니라 속도가 빨라지는 정도인 가속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해요.


커피에 좀 더 신경을 쓰고 걸으면 확실히 덜 엎지르게 되죠? 그 때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가속도가 커지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거래요.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커피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커피잔을 들고 걷는다면 7~10걸음 안에 커피가 손으로 쏟아질 거라고 합니다. 거리로 따지면 4~5m정도밖에 가지 못하는 거죠.

버스정류장 근처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서 버스정류장에 앉기 전에 쏟았다, 스스로를 탓하셨었겠지만, 이제부터는 과학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고 합리화 할 수 있겠습니다.



뜻밖의 의의



이 연구 이전, 사람들은 찰랑거리는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찰랑거리는 액체나 걷는 사람 각각에 대해서는 의외로 깊이 연구를 해 뒀죠.



- 찰박거리는 액체(liquid sloshing) :  가속도와 진동을 모두 따졌을 때 거대한 로켓 연료탱크 안에서 액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동차를 제대로 조종하기 위해 흔들리는 액체를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걷기 : 걸을 때 사람의 무게중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효율은 어떤지/ 남녀, 나이, 건강상태에 따라 어떤 패턴을 보이는 지/ 자연스럽게 걸을 때 사지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오래 걸을 때 규칙은 어떤지


그러나 아직까지 둘을 같이 고려할 생각은 아무도 못해본거죠. 그래서 연구진은 유체역학과 생체역학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 유쾌한 주제를 제시했고, 그 덕에 이들은 2012년, 괴짜들의 노벨상인 이그노벨상의 유체역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연구가 던진 작은 파장


연구라는게 언제나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는 하다지만, 이 연구는 전혀 쓸모없어보인다고요?

일단 적어도 우리나라의 한 고등학생에게는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다음 글에서 소개해드릴게요.



참고자료


Mayer, Hans C., and Rouslan Krechetnikov. "Walking with coffee: Why does it spill?." Physical Review E 85.4 (2012): 04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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