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잔을 들고 걸어가면 반드시 넘칩니다. 반드시요
러시아의 루슬란 크레체트니코프, 한스 마이어
Rouslan Krechetnikov (RUSSIA) and Hans Mayer (USA)
왠일로 눈이 일찍 떠진 날입니다. 간만에 샤워도 오래 하고, 옷도 한참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있네요. 원래는 정신없이 학교로 뛰어가지만, 오늘은 상쾌한 기분으로 집앞에서 커피를 삽니다. :)
그런데 꼭 이런 날 안하던 짓을 해서 걸어가다가 커피를 엎지르죠. 차려입은 옷이 얼룩덜룩해진 꼬라지가 볼만 합니다. 내 인생이 다 그렇죠 뭐....
이제 우리 이럴 때 스스로를 탓하지 맙시다. 2012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의 대학원생 한스 메이어와 루슬란 크레체트니코프 교수가 '어쩔 수 없다고' 정신승리 할 수 있는 이유를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이분들은 간지나는 수염만큼이나 임팩트 있는 연구결과를 세상에 발표합니다. ‘융합’이 대세가 된 시대, 유체역학과 생체역학의 콜라보레이션 결과를 세상에 내놓아 상까지 받죠.
<실험 방법>
1. 사람들에게 커피를 손에 들고 앞으로 자연스럽게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2. 느리게/빠르게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3. 커피잔에 신경을 쓰고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4. 커피 따위 신경 쓰지않고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5. 이 모든 장면을 초당 100장으로 찍는다.
커피는 컵 안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앞뒤로, 양옆으로, 위아래 위위아래, 그리고 빙글빙글 회전하게 될텐데요. 우리가 커피를 쏟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앞뒤방향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커피가 넘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멈춰있던 사람이 걷는다고 하면, 사람은 점점 빨라지다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떨 때 쏟아질까요?
속도가 빨라지면 커피가 잘 쏟아질까요? 속도가 빨라질 때, 커피의 위아랫 방향 흔들림이 늘어납니다. 사람이 걸어갈 때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커피잔 안 커피는 위아래로 웬만큼 흔들리지 않고서야 넘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커피를 쏟는 상황은, 커피가 앞뒤 방향으로 흔들리다가 훅 넘어가버리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속도만 놓고보면 사실 큰 상관은 없어요.
그런데 특이한 점은, 커피가 넘치게 하는 '앞뒤방향 움직임'은 이것과 다른 경향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앞뒤 방향 움직임은 속도가 아니라 속도가 빨라지는 정도인 가속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해요.
커피에 좀 더 신경을 쓰고 걸으면 확실히 덜 엎지르게 되죠? 그 때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가속도가 커지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거래요.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커피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커피잔을 들고 걷는다면 7~10걸음 안에 커피가 손으로 쏟아질 거라고 합니다. 거리로 따지면 4~5m정도밖에 가지 못하는 거죠.
버스정류장 근처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서 버스정류장에 앉기 전에 쏟았다, 스스로를 탓하셨었겠지만, 이제부터는 과학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고 합리화 할 수 있겠습니다.
뜻밖의 의의
이 연구 이전, 사람들은 찰랑거리는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찰랑거리는 액체나 걷는 사람 각각에 대해서는 의외로 깊이 연구를 해 뒀죠.
- 찰박거리는 액체(liquid sloshing) : 가속도와 진동을 모두 따졌을 때 거대한 로켓 연료탱크 안에서 액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동차를 제대로 조종하기 위해 흔들리는 액체를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걷기 : 걸을 때 사람의 무게중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효율은 어떤지/ 남녀, 나이, 건강상태에 따라 어떤 패턴을 보이는 지/ 자연스럽게 걸을 때 사지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오래 걸을 때 규칙은 어떤지
그러나 아직까지 둘을 같이 고려할 생각은 아무도 못해본거죠. 그래서 연구진은 유체역학과 생체역학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 유쾌한 주제를 제시했고, 그 덕에 이들은 2012년, 괴짜들의 노벨상인 이그노벨상의 유체역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연구가 던진 작은 파장
연구라는게 언제나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는 하다지만, 이 연구는 전혀 쓸모없어보인다고요?
일단 적어도 우리나라의 한 고등학생에게는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다음 글에서 소개해드릴게요.
참고자료
Mayer, Hans C., and Rouslan Krechetnikov. "Walking with coffee: Why does it spill?." Physical Review E 85.4 (2012): 04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