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좋아한다. 땀 흘리는 운동은 싫어서, 계절이 바뀌는 공기를 나른하게 마시는 숨이 좋아서.
그러다 곰탱이를 만났다. 그러니 산책이 좋은 이유는 옆에, 조금 아래에서부터 들리는 걸음 소리가 좋아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 때면 입을 활짝 벌리고 헤- 웃는 모습이 좋아서.
사소하게 좋아하던 것도, 사소하게 싫어하던 것도 모두 곰탱이와 함께여서 같이 좋아지고, 곰탱이가 싫어해서 덩달아 싫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리 맡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포근한 온기. 동그랗게 말며 자다가 뒤척이며 내 발목에 턱을 올리는 몸짓. 누군가와 함께 잠을 자면 깊게 자지도 못하면서 항상 가족들과 살을 맞대고 자야 했던 그 똥고집. 나의 외출을 긴장감에 숨죽이며 쳐다보던 그 검고 동그란 눈빛과 나의 귀가에 온몸을 감돌던 긴장감을 무장해제 시켜 온 힘을 다해 달려와 안겼던 하얀 털뭉치.
내가 사랑하던 일상. 언제든 내가 돌아가야 하는 목적지이자, 어떤 순간에서도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게 나를 지탱해준 원동력.
우리 똥강아지, 우리 곰탱이. 내 16살된 동생은 따뜻하고 화사했던 봄날 아침에 내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문득 눈물을 울컥 쏟아내고, 늘 보고 싶고, 이뻤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나 툭-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유난’ 좀 떨지 말라고 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다거나, 그렇게 개를 키우고 싶으면 새로 하나 입양하라고 말했다.
아이가 사람이 아닌 개여서ㅡ 사람들은 내 상실감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아이가 내 형제가 아닌 반려견이어서, 가족이라면서도 끝까지 온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ㅡ 나의 상실감은 유난이 됐고, 나의 그리움은 쓸데없는 짓이 됐다.
곰탱이가 16살짜리 개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난 울어도 될까?
곰탱이가 하얀 털이 수북한 진돗개가 아니라 피부가 하얗고 예쁜 강아지상 여자아이였다면 내 상실감은 조금 더 이해받을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내가 사랑한 곰탱이는 16살짜리 백구였지.
곰탱이가 사람이 아니라 개여서, 털이 하얀 진돗개여서 사랑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내 동생이 곰탱이였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