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리 똥강아지>
곰탱이는 급사했다. 멀쩡하게 잘 돌아다녔고, 똥도 잘 쌌고, 밥도 맛있게 잘 먹었고, 날이 갈수록 예뻤고. 그랬는데, 갔다. 손을 써볼 수도 없었던 새벽, 어디도 갈 수 없었던 깊숙한 시골집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돌소파를 차지하고, 갔다. 언제나처럼 가장 예뻤고, 여느 때처럼 가장 예뻐졌을 날 아침에.
정확한 사인을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곰탱이가 떠나기 전 새벽부터 복부가 비정상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는데, 노견에겐 치명적인 증상이다. 소화 기능이 약해져 음식물을 잘못 섭취하면 위가 자극을 받아 급격히 팽창하고, 뱃속에 찬 가스가 빠지지 못하면서 팽창된 위장이 다른 장기들과 혈관을 눌러 결국 심장이 멈추게 된다.
그날 새벽, 시골집에는 나와 아빠, 곰탱이뿐이었다. 정확히는 아빠와 곰탱이가 집에 있었고, 나는 집 옆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공부를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 소파에 누웠다. 그러면 안방에서 아빠와 자던 곰탱이가 냉큼 나와 내 옆에 누웠다. 원래는 그랬어야 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혼자 못 자는 곰탱이가 소파에 길게 엎드려 누워있었다.
날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기특한 마음에 그 옆에 길게 누워 곰탱이를 안았다. 그런데 아이 숨소리가 이상한 것이었다. 힘겨운지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고, 그 입 주변에 깔린 이불은 끈적한 침으로 흥건해 있었다. 눈만 똥그랗게 끔뻑끔뻑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가 새벽 3시였는데, 놀란 나는 일어나 곰탱이를 들어 안았다. 축 늘어진 아이의 몸은 평소보다 더 무거웠고, 평소엔 자기 몸을 안거나 들어 올리는 행위 자체를 싫어해서 이빨을 드러내기까지 했던 곰탱이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내게 안겼다.
배가 불룩하게 부풀어있었다. 나중에서야 듣기론 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자다 깨 항상 밤참을 드시던 아빠를 따라 나온 곰탱이가 바로 소파에 뛰어올라 앉더랬다. 자기만 끔뻑끔뻑 바라보는 곰탱이가 왜 저러나 싶었던 아빠의 눈엔 저녁이면 챙겨놓던 아이 밥그릇에 밥이 그대로 있는 걸 보고 배가 고프구나 싶었다고 했다. 밥 먹으란 말에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곰탱이가 아침 빼고 하루종일 굶은 게 걱정됐던 아빠가 밥그릇을 가지고 곰탱이 앞에 놓아주니 기다렸다는 듯 아이는 싹싹 비웠고,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런 내막을 몰랐던 나로선 곰탱이가 체한 건가 싶기만 했다. 곰탱이가 팽창된 복부가 눌려 불편하지 않을 자세로 품에 안았고, 아이의 입에서 주룩주룩 흐르는 침을 내내 닦았고, 경직돼 굽어지지도 않던 뒷다리를 내내 주물러 주었다. 뱃속에 쌓인 가스가 트림으로든 방귀로든 나올 수 있도록 엉덩이와 배와 가슴을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전에도 그랬으니까.
그때로부터 6개월 전인 2022년 11월 초. 같은 증상이 있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밥을 먹였고, 그러자 몇 시간 안 돼서 배가 부풀어 곰탱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 새벽이 되도록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잠도 자지 못하던 곰탱이는 아침이 되어 비로소 일어서곤 마당에서 볼일을 본 후 다시 들어와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용트름을 시원하게 쏟아냈다. 한결 가벼워진 곰탱이는 그날 하루종일 잠들었고, 이후엔 다시 똥꼬발랄한 똥강아지로 돌아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11월에는 모든 가족들이 시골집에 있었고, 야간이어도 병원에 갈 수 있는 차가 있었고, 그때 곰탱이는 자기 몸의 두 배는 넘게 부푼 배를 이끌고도 병원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때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보호자 눈앞에서 경악스럽다는 티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위장이 뒤틀려서 가스 배출이 안 되고 있어요. 지금 바로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일단 지금 바로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야간이라 수술비도 두 배, 입원비랑 진료비도 두 배라서 다 합하면 600에서 700만 원 정도가 되겠네요. 그런데 일단 노견이라서 수술 자체가 아이한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요. 가스만이라도 뺄 수는 있는데 다시 금방 찰 거예요. 아마 길어도 내일까지 일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편이…”
당시의 그 말이 나에겐 ‘수술해 봤자 아무 소용없을 거니 헛돈 쓰지 말고 그만 돌아가’라는 말로 들렸다. 결국 우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곰탱이와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곰탱이는 살았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용트름으로 멋지게 이겨낸 곰탱이였다. 이번에도 그렇게 멋지게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일했다.
11월의 곰탱이는 걷기라도 했다. 11월의 곰탱이는 새벽 내내 내 품에서 잠을 자다가도 자리가 불편하면 일어날 수라도 있었다. 입을 벌려 숨을 쉬기는 했어도 침을 질질 흘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1월의 곰탱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내게는 ‘언니, 내 몸이 이상해. 도와줘.’라고 말하는 듯했다.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부터 곰탱이가 화장실을 가겠다며 일어선 아침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울었다.
하지만 4월의 곰탱이는 사지가 굳었고, 질질 흐르는 침은 너무 끈적거렸다. 다시 소파에 눕히고 그 옆에 마주 보고 누운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나는 어떤 구조신호도 발견하지 못했다.
4월의 곰탱이는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내 얼굴에 숨을 불어넣었고, 단 한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만질 수 있는 곳이 아이의 뺨 밖에 없어서 그 뺨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쓰다듬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숨과 온기를 주고받는 것뿐이었다.
저항 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11월의 나는 도와줄 수 없는 답답함에 서러워서 울었다면, 4월의 나는 손에 쥔 모래더미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허무해서 울었다.
곰탱이는 평온한 얼굴로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곰탱이는 눈을 마주치거나 얼굴을 마주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내 얼굴에 천천히 옅어져 가는 숨을 꾸준히 뿜어주던 곰탱이는 아침 9시경, 심장이 멎은 충격으로 네 다리를 힘차게 차 뻗었다. 그 앞발이 내 가슴에 닿았다. 나는 그 발을 꼭 잡았고, 아빠를 불렀다. 아이가 기침하듯 제 안에 남은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와 아빠의 모습이 담겨 있던 아이의 눈빛이 뚝- 꺼졌다.
마치 tv 브라운관이 꺼지듯, 죽은 자의 영혼이 눈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했던 옛 조상들의 말처럼.
뚝-.
2023년 3월, 산책을 하다 발톱이 빠진 곰탱이를 데리고 시골 동네 병원으로 갔다. 그때 수의사 선생님은 처음 와본 병원 곳곳을 누비며 냄새를 맡던 곰탱이의 나이를 듣더니 말씀하셨다.
“너무 건강해서 스무 살도 거뜬히 살겠네요. 오래 봤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랬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