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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May 25. 2024

내 마음속 두 번째 친정집-남해

조용한 남해를 온통 뒤흔든 딸의 행복한 비명소리

딸 연우는 신이 났다. 혼자 풀장을 독차지하고 수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영장도 파랑, 하늘도 파랑 그리고 입술도 파랑. 그만 나오라 해도 오늘 물속에서 잘기세다. 제일 좋아하는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온통 시선은 수영장에 꽂혀있다.


앞선 여행에서는 숙소는 한껏 이쁜 곳을 선택해 놓고 맘 놓고 쉬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다음 날 코스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차선책도 한두 개 더 알아놔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딸과의 단둘이 여행이라 짜여진 일정에서 대본과 다르게 벗어나면 극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에 완벽히 짜인 무대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남해 -여기 펜션에서는 나도 딸도 여유로웠다. 그 이유는 다음날은 택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사전조사에 의하면 남해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았다. 가려는 곳은, 독일마을, 보리암, 스카이워크, 양떼목장, 카페 돌창고 -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어디를 먼저 가든 버스 두 번 갈아타는 건 기본, 차만 타다가 집에 가게 생겼다. 도저히 남해는 시내버스로 다닐 수가 없었다. 택시투어는 시간도 내 맘대로, 코스도 내 맘대로 짜기만 하면 기사님이 나를 모시고 다니는 그런 상품이었다. 그래서 나와 딸은 온전히 첫째 날 저녁을 푹 쉬면서도 다시는 못 올 것처럼 바다를 즐겼다. 펜션 바로 앞이 바다였는데 사람도 없었고 8월이었지만 구름이 해를 가려주고 있어서 덥지도 않은 완벽한 곳이었다.

친정 엄마집에 온 느낌이었다. 시댁이나 친구집에 가면 가자마자 집 갈 생각부터 하는데 친정에 가면 며칠 더 있고 싶은 것처럼 편안한 풍경과 집이었다. 1박만 예약한 게 아쉬워서 사장님한테 하루 더 묵어갈 수 있냐고 여쭤보니 예약이 다 찼단다. 괜히 별점이 5점 만점에 5점인 게 아니었다.

택시기사님은 우리 모녀를 보자마자 택시에서 내려 거의 90도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우리의 짐을 실어 주셨다. 나는 독일 마을에 먼저 가고 싶다고 했는데 기사님은 보리암에 먼저 가고 독일 마을을 둘러본 뒤 점심을 하는 게 어떻게냐고 제안을 하셨다. 선한 인상의 기사님이 말씀하시는데 거부할 수 없었다. 보리암 가는 길에 쭉 이어진 가로수는 8월의 싱그러움과 청량감이 더해져 초록초록 진초록이었다. 기사님의 중간중간 여행기도 듣고 무엇보다 편안히 등을 기대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보리암 주차장에 도착하고 기사님은 천천히 둘러보고 오라고 말해줬다. 날씨가 좋고 구름 한 점 없으면 보리암에서 향일암이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보리암은 산 끝에 매달려 있었다. 스님들은 옛날부터 이산 저산 수행하러 다니시면서 길한 풍수지리 다 파악하셨나 보다. 향일암도 그렇고 보리암도 이렇게 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바다를 꼭 품고 있는 암자였다.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은 나도 소름 돋는 보리암 전경에 말문이 턱 막혀 말을 한동안 못했다.

나와 연우는 사진기사와 모델이 되어 서로 찍히고 찍어주느라 바빴다. 하지만 사진에 담는 것은 눈에 담는 걸 이길 수가 없었다. 365일 여기서 산다면 어떨까? 평생에 두세 번 어쩌다 와야 이감동의 물결이 일어나는 거겠지만 당장은 여기 보리암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내려왔고 우리를 기다리는 친철한 기사님 택시를 타고 독일마을로 향했다. 보리암에서 나는 감성으로 배를 채웠지만 딸은 소세지 나팔을 불 기세로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뭘 먹을까 차 안에서 편안히 검색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지- 독일 마을은 주위가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비밀의 마을인 듯, 외부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자랑을 할까 말까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 여기부터는 독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색깔, 냄새 그리고 그 마을 분위기가 이국적이고 주변 동네와는 완전 정반대였다. 독일의 어느 마을을 뚝 떼와 여기에 내려놓은 것처럼 말이다. 바닷바람과 산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오고 연우와 나는 손을 꼭 잡고 둘이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녔다. 독일은 잘 모르지만 독일의 알 수 없는 어디 거리를 걷고 있겠거니 상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이 이쁜 집에 정말 사람이 거주하는 집도 많다고 한다. 그런 곳은 조용조용 지나갔다. 독일에 파견 나갔던 우리나라 간호사와 광부들이 일을 다 마치고 이곳 남해에 와서 집을 짓고 살았다는데 그분들도 나와 같이 남해에서 친정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나 보다. 고국에 돌아와 여기 남해에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즐겼을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고 그 순간이 소중했을까. 우리 모녀도 1박 2일의 여행이 거의 막바지를 향해 갈 무렵 여기 독일마을에서 소세지를 곁들인 런치세트를 먹으며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내 앞에 앉아서 소세지를 양 볼에 가득 넣고 맛있게 먹고 있는 딸의 얼굴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배를 채웠으니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다. 스카이워크라는 곳인데 몸을 안전장치가 가득 달린 줄에 매달려 공중그네를 타는 체험이었다. 티브이로 이런 비슷한 것을 볼 때는 줄에 안전하게 매달려 있는데 뭐가 무서워, 오바액션 한다, 어지간히 호들갑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이야. 막상 그 줄을 몸에 매달고 나니 혹시 만에 하나라도 썩은 동아줄이 아닌지 자꾸만 당겨보게 되었다. 바닥도 온통 유리라 옴싹달싹 못하고 있는데 안전요원이 발을 떼보라고 해서 주렁주렁 줄에 달린 채 고래고래 소리를 꺅꺅! 악악! 거렸지만 바다는 고요했고 대답이 없었다. 그 옆에선 연우가 겁도 없이 엉덩이부터 허공에 내어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초딩이라 겁도 없다. 눈빛이 약간 풀려 있었지만 이내 감을 잡고 놀이터 그네 타는 것 마냥 태연하게 잘 타고 있는 것이었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꼭 한번 해볼 만하다. 줄에 매달린 뒷배경엔 둥근 바다가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작은 손으로 줄을 잡고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걸 즐기면서도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지만 연우는 재밌어했다. ‘엄마 이제 그만!’ 연우가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했지만 엄마인 나는 딸의 인생샷을 건지려 사진을 연신 찍으면서도 살기 위해서 몸에 아직 생명줄을 매단 채 안전하게 몸을 최대한 낮췄다. 어떻게 찍어도 중간 이상의 그림이 나오니 꼭 가보고 체험해 보길 권한다.     

그다음은 우리의 하이라이트! 양떼목장으로 갔다. 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는지는 잠시 후에 밝히겠다. 양떼목장에는 정말 양이 떼거지로 있었다. 매표소 같은 곳에서 표를 사는 게 아니라 토끼에게 줄 당근과 양에게 줄 풀이 든 바구니를 사는 것이다. 그걸 들고 가면 양들이 우리를 막 쫓아온다. 바구니가 파란색이었는데 양들은 오직 그것만 바라본다. 연우는 양들의 왕이 된것마냥 개선장군 행진하듯 바구니를 들고 양들 사이를 가로질러 갔다. 그럼 양들은 먹이를 주는 꼬마아이에게 음메를 연신 외치며 따라온다. 겁도 없이 그냥 들이댄다. 그러다 한 마리 양이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이빨이 없는 양이지만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말이다. 풀을 주다 말고 겁이 난 딸은 도망쳤다. 웃어야 할지 가서 딸을 구해줘야 할지 순간 고민했지만 나는 또 카메라 기사정신이 발동하여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앵글까지 돌려가며 연신 찍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웃긴 모습을 뒤에서 기사님이 동영상으로 찍으시고 나에게 파일로 보내주셨다. 연우는 큰 원을 삥 돌며 뒤에 달려오는 늑대양에게 잡아먹힐까 전속력으로 도망가고, 양은 또 그 풀바구니를 보고 미친 듯이 돌격하는데 나는 엄마이길 포기하고 동영상 찍기에 바쁜 모습이다. 여행은 먹는 게 남는 게 아니라 사진과 추억이 남고 남는 것이다. 택시 기사남이 보내준 이 동영상은 남해생각이 날 때마다 몇번씩 본다. 이런 소중한 순간을 포착하여 찍어준 택시기사님께 다시 한번 또또 감사드린다.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편안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유는 단연코 뚜벅이가 아닌 택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편하니 온전히 남해를 즐길 수 있었다. 아빠가 태워주시는 차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편안하고 꾸밈없는 느낌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남해는 사람도 아주 많지 않았고  풍만한 바다와 여기저기 마을마다 넓게 펼쳐진 밭이 폭 감싸주는 엄마품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 친절하신 남해의 택시 기사님의 공이 아주 컸다. 여행 내내 엄마와 같이 못 온 게 마음에 걸렸고 참 죄송했다. 다음에는 같은 코스로 진짜 친정엄마와 엄마집 같은 이곳에서 1박 2일이 아니라 한 4박 5일쯤 여유 있게 남해를 즐겨보려 한다. 꼭 같이 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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