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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May 12. 2024

향일암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여수를 첫 여행지로 정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이 사진을 보고 나서이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볼을 쓰다듬고 꼬집어주고 싶었다. 나는 불자도 아니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간이 맞으면 일출도 보리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향일암 코스는 이튿날 아침에 넣었다.

첫날에 이순신광장, 오동도, 케이블카, 돌산대교 등의 행군도 실로 여기 향일암을 가기 위한 훈련이었다. 정말 우리는 이날 꽤 많이 걸었다. 8살 꼬마 아이는 그래도 첫 여행이 신이 났는지 어딜 가서도 좋아해 주고 흥분해 줬다. 딸에게 선물을 준거 같아 뿌듯했고 보람찼다. 이순신 버거를 먹을 때에는 롯데리아보다 맛있다고 연신 따봉을 치켜세우고, 벽화 마을에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사진 찍을 거라고 멈춰라, 브이 해라, 웃어라, 더 크게 행복한 척이라도 하라 하면 잘 응해줬다. 케이블카 탈 때는 둘 다 눈이 똥그래지면서 깜짝 놀랐다. 처음 탄 티 팍팍 내며 “우와! 와!” 하느라 실내가 소란스러웠다. 둘만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관광을 하러 온건인지는 몰라도 둘이 좋아 죽었다.

첫째 날 여행을 마치고 딸의 소원! 저녁 간식으로 컵라면 먹기를 들어주고 잠자리에 일찍 들었다. 내일 새벽 버스 타고 향일암을 위한 강제 수면이었다.

깜깜한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렇게 어두울 줄이야.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두 번째 버스에 올라 향일암까지 이제 잘 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1시간 정도라는 것은 미리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길이 이렇게 구불구불하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빙빙 돌았다. 딸은 잘 버텨주었는데 내가 못 버티겠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버스 안에서 기절하는 건 아닌지,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게 아닌지,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오직 향일암 불상 보러 가는 길인데...

여기서 포기할까? 응, 아니야. 거의 다 왔어! 연우도 참고 있잖아. 머릿속이 갈등과 번뇌로 터져갈 때쯤 손과 발이 땀으로 축축해질 때쯤 향일암 종점에 드디어 도착했다. 버스에서 발을 내딛는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기차역에 내린 것처럼 이렇게 땅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휘청!’ 다리 무릎에 힘이 풀렸다. 여전히 메슥거리는 속과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머릿속은 아직도 흔들리는 버스 안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침을 난 먹지 않았다. “우선 저기 좀 앉자” 하고 편의점 옆 간의 벤치에 앉았다. 그 앞에 바다 풍경이 또 장관이었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여수바다는 눈치없게 반짝였다. “연우야, 카메라. 카메라!” 사진은 찍어야 했다. 그렇게 사진 또 몇 방 찍고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사서 입속에 밀어 넣었다.

이제 가보자!

띠로리! 향일암으로 가는 언덕길 경사가 굉장히 가팔라 보였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 속이지만 생각해 보면 거의 직각에 가까운 거 같아 보였다. 초콜릿과 과자 몇 개를 먹어도 속은 가라앉지 않았고, 길은 왜 이렇게 높아 보이는지…. 버스에서 잘 참고 와서 바로 목적지가 눈앞인데 왜 가질 못하니…. 이 바보야! 향일암 올라가다 굴러 떨어져 저기 저 여수바다까지 굴러갈 헤드뱅뱅이었다. 더 이상은 못 참고 정말 하기 싫었던 말을 연우에게 하고야 말았다.

“연우야. 그냥 다시 호텔로 돌아가자. 엄마 죽을 거 같아.”

그리고 나는 딸에게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향일암에 못 갔다고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총탄에 맞은 이순신 장군이 억울할까 내가 억울할까.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인데 엄마는 아직 더 살아야겠으니 백 보 후퇴하자고 했다.

착한 딸 연우는 그러자고 했다. 눈이 또 한 번 똥그래지면서.

그렇게 우리는 다시 빙빙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호텔로 되돌아왔다. 이상하리라 만치 신기하게 호텔로 돌아갈 때는 속이 차차 괜찮아졌다. 이 바보. 눈물 핑. 고개 푹!

여수를 처음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단 한 가지-향일암 그 불상 때문이었는데 다른 건 다 하고 그 최종 목적지를 못 간 것이었다. 너무 원통했다. 분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더 생각이 많아졌다. 절에 가지도 않고 깨달음을 얻었다.

<긴 여행에선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느니라>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향일암에 다시 올 것! 지금도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미루고 아껴두고 있다. 나의 여행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고 난 후에 여기 향일암에 다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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