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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May 18. 2024

아~~ 신라의 밤이여!

내가 다시 경주에 간다면

다시 경주에 간다면 동궁과 월지부터 출발할 것이다. <불국사(석가탑, 다보탑)→석굴암→대릉원(천마총)→황리단길→첨성대→경주박물관→동궁과 월지> 이 순서가 아니고!! 거꾸로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서 아침 일찍 경주박물관에 간다. 그리고 성덕대왕 신종 종소리를 상상하며 둘러볼 것이다. 최근에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을 관람하고 와서인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두 개의 종이 겹친다. 종에 얽힌 사연이 참 슬프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을 울리는 꼽추 콰지모토의 노트르담 대성당 종,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의 말씀을 멀리 전파하기 위해 아기를 공양해서 만들었다는 에밀레 종소리. 묵직하고 깊게 울리는 종소리는 현대의 기술로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한다.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이입하지 못해서일까.


경주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은 해가 지고 나서이다. 동궁과 월지의 점등은 일몰 이후인데 이때가 5월인지라 해도 참 느리게 졌다. 나와 딸은 조명이 켜지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우리의 기다림과 피로는 극에 달하고…. 드디어 불이 짠! 켜지는 순간!!! 이거였구나…?! 사전 조사 때 다른 사람 블로그 사진을 너무 많이 보고 꿈에서 너무 많이 가봐서 크게 감동이 와닿지 않았다. 완전 어두울 때 봐야 장관인데 종일 걸었던 우리는 "직접 봤으니 됐다!" 쓰러지기 직전에 마지막 미션 수행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에 바빴다.     

경주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숙소이다. 바로 황룡사지 9층 목탑이 바로 전면에 보이는 호텔이었다. 그저 이 이유하나 때문에 여기를 정했다. 창문을 통해 사진을 찍으면 그냥 여기가 신라야! 나는 진짜 황룡사 탑인 줄 알았는데(무식함 대방출!) 복원건물이고 연수원 같은 곳이었다. 어쨌든 뷰 하나로 모든 게 용서된 호텔이었다.

황룡사를 다시 복원하면 아파트 30층 정도의 높이가 된다고 한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껴맞춰서 지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신라의 정복대상을 각각의 층에 담았다는데 1층은 일본/2, 3층:중국/4층:탐라도/5층:백제/6, 7, 8층:유목민족/9층:고구려

그럼 나는? 

1층:다이어트/2층:기타/3층:요가강사 자격증/4층:유창한 영어/5층:작가 되기/6층: 유럽, 인도, 미국여행 /

7층:딸 서울대 보내기/8층:노후 대비 목돈/9층:우리가족의 건강

참 신라의 그것과 비교해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지만 지금은 나의 여행중이니까.

나라 안팎으로 어려웠을 신라의 그때, 선덕여왕은 신라 사람들에게 선포한다. 

"우리 신라가 삼국통일 위기 속에서 중심이 되자!"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찾아올 때 황룡사 같은 비전을 종이에 써서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 놓든  또는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면 항복하지 않고 계속 전진할 힘이 용솟음칠 것 같다.

  

부처님 오신 5월에는 불국사에 가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 오시기 전부터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런 명소에 와서 소원 한 가지씩은 부처님께 빌어야 하니까. 여기도 사람들, 저기도 더 많은 사람. 초여름의 크리스마스라고나 할까. 예수님 분발하셔야겠다. 석가탑을 고요하게 보고 싶었다. 대웅전 앞에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데 난 예전부터 석가탑에 맘이 기울어져 있었다. 애절한 러브스토리- 현진건의 무영탑을 읽고 나서 석가탑은 내 마음의 사랑탑이 되었다. 아사녀에 빙의돼서 연못에 뛰어들기 전까지 그림자도 못 본 남편 아사달의 작품을 조용히 보고 싶었다. 그런데 혼이 쏙 빠질 만큼 많은 인파에 눈물은커녕 감성 다 날아갔다.     

석굴암엔 가지 않을 것이다. 석굴암을 보기 위한 줄이 꼬불꼬불 끝이 안 보였다. 일찍 출발했는데도 줄이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굴 안에 있는 커다란 돌 불상 있는 게 다다. 그래도 1시간 기다렸는데 조금이라도 더 관찰하려 했으나 뒤에 또 사람! 빨리 보고 비켜줘야 한다는 조급함에 떠밀려 나왔다. 석굴암을 톨게이트 지나오듯 빠져나와 산 아래 경치를 내려다봤다. 와~~ 석굴암 짓느라 신라 사람들 뼈 빠졌겠네. 토함산 길이 가파르진 않았지만, 저 무거운 돌 지고 오는 거 하며, 부처님 모습 새기느라 손에는 굳은살이 석굴암 돌보다도 딴딴해졌을 것이다. 석굴암 만들러 간 아버지,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들은 따뜻한 밥 먹을 때  눈물 한 방울, 한겨울에 이불 덮고  잘 때에도 옆으로 돌아 누우며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들이 베개를 적셨으리라.


첨성대가 덩그러니 흙바닥 같은 데에 놓여 있고 그 주위에는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냥 단아한 곡선미. 끝. 한낮 더울 때 봐서 그런지 몰라도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감흥을 되살리기에 나의 역사가 흐른 것인지 그만큼 내가 큰 건지 알 수 없는…. 정말 솔직하게 실망감이 살짝  많이 들었다. 첨성대 또한 밤에 봐야 멋진 조명과 함께 볼 수 있다는데 여기 또한 한낮에 왔으니 사막 위의 피라미드도 무더위에 보면 이렇게나 감흥이 없을까? 정말 별을 관측했는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그때 당시의 최고의 기술로 만들었을 첨성대!  정말 천문대였다면 가장 밝게  빛나는 북극성을 찾아 한반도의 중심에 있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쏘아 올려 보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경주하면 우리 모두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사(史)를 못한다. 한국사, 세계사…. 머리에 도통 들어가지 않는다. 무작정 외우는 게 너무너무 싫고 문화재를 외우는 건 토할 것 같다. 그래도 어미로서 해야 할 건 해야 하는 법, 딸아이가 한국사를 정말 좋아한다. 만화책 맹꽁이 서당을 시작으로 한국사에 관심이 폭증했다. 그래서 한국사 시험에 도전하기로 하고 그전에 동기부여 팍팍 주기 위해서 문화유산의 총집합하면 경주니까 자석에 금속 딸려가듯 그냥 가기로 했다. 그럼 내 딸의 기억 속에는 경주=한국사 시험 이런 연결고리가 생길까? 기록과 사실로 남아있는 역사 앞에서 그것들을 눈으로 직접 보며 이제 써내려가고 있는 우리 딸아이의 멋진 미래를 상상해보고 싶었다. 뭐냐고 물어보니 한국사 교수님. 아니! 꿈은 커야 해! 한국사를 영어, 수학을 제치고 제1의 필수과목으로 하는 선덕여왕과 같은 나라사랑에 진심인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개꿈이 아니길 더 바란다.  

    

이렇게 경주에 다녀오고 연우는 한국사 자격검정시험을 최태성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들려온 별별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 한 대목

“경주의 밤은 참 아름답습니다. 동궁과 월지부터 가셔야 합니다. 밤에 숙소에 계시지 말고 꼭 밖에 나와서 걸어보세요. 그다음은 첨성대로 가세요. 조금만 내려가시면 왕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야경을 기가 막히게 환상적으로 해놨습니다. 카페촌이 쭉 줄지어 있는데 왕릉을 바라보며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잔 하며 무덤뷰를 보세요. 평생 잊지 못할 천국 같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인생샷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말 환상적입니다.”

역시 명강의! 최태성 선생님! 이래서 역사는 공부해야 한다.

환상적으로 반대로 돌고 돌아온 <나의 경주문화유산답사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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