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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싶은 대로 Aug 01. 2022

내일의 출근이 두려운 너에게

또라이 보다 무서운 빌런을 만났을 때

글을 이어가기 전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불안에 몰두할 때마다  비겁해집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때, 실패할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감당하기 어려운 관심을 받을 때 가장 큰 불안을 느끼는데, 그럴 때마다 늘 도망치는 것으로 불안의 원인을 차단하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시고 관심을 보내주셨기에 며칠 동안은 전처럼 편하게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잘 해내지 못할 까 봐 겁이 났습니다. 좋은 글을 쓰지 못할 까 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던 저의 속마음을 들켜버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해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글을 써봅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셨고, 남겨주신 댓글을 통해 저도 큰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공감의 마음을 담아 구독 버튼을 꾹~ 눌러주신 나의 소중한 구독자, 브런처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조금 더 고민하고 마음을 담아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전해봅니다. : )



# Part2.

지난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오래전 기억을 되짚어 보니 나는 수시로 도망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이 정도면 '도망의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패의 기운이 감지되면 도망치듯 이직과 퇴사를 반복했다. 두 번의 창업과 폐업도 도망의 역사에 포함된다.

 

뭐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꿈과 환상에 부풀어 내가 도망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낸다. 그때에는 누군가의 뼈 때리는 조언도 도통 통하질 않는다. 하고 싶으니 무조건 해봐야 하는 그 순간에는 긍정적인 미래만을 꿈꾸며 그럭저럭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순간들을 잘 견디어 지나친다. 그러나 취업을 하거나 일을 시작한 지 딱 3개월이 지나 수습 딱지를 떼면 여지없이 도망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와 6개월이 되면 들끓기 시작한다. 특히 사람이 힘들 때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새로운 그룹에 합류하여 돌+아이를 찾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도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사이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다 또라이라고 할 순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도 그리 나이스 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안다.


그래서 나에겐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신의 직장'보다 더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평생 한 직장에서 나와 맞거나 혹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로를 평가하고 평가받으며 10년, 그리고 또 10년. 상상만 해도 괴롭지만 누군가 해낸다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싶다.


힘들게 하는 동료 또는 후배, 리더가 있을 때마다 나는 늘 도망갈 핑계부터 찾았다. 어느 회사에나 있을 돌+아이를 발견하고 그 돌+아이가 나와 가까이 있음을 감지했을 때 나는 퇴사와 이직의 카드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과 잘해보려는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면담도 해보고 일대일로 차도 마셔보고 술도 마셔보며 인간적으로 이해해보려고 애를 써봐도 인간관계에서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어느 회사, 조직이나 돌+아이 하나 정도는 있기 마련이고 또라이도 이런저런 돌+아이를 경험하다 보면 경험치가 쌓여서 연차가 쌓인 만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치 또한 커진다. 직장생활 10년 차에 이제는 웬만한 돌+아이는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만렙이 되었다고 자만했을 때, 빌런을 만났다.


이미 그는 회사에서도 소문난 빌런이었고, 나보다 먼저 이 회사에 온 여럿을 퇴사의 길로 인도했다. 이미 나는 면접 때부터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감지했다. 보통은 아닐 거라고 예상하고 왔지만 나는 나의 능력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정규직 팀원이 3명, 계약직 직원이 3명인 팀이었는데 내가 입사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입사 6개월 차였던 옆자리 동료가 퇴사를 했다. 팀원들만 있는 슬랙 채팅 방에서 모두가 그녀의 퇴사를 축하하며 다음 타자는 자기가 될 거라고 손을 들었다. 그녀가 떠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다른 동료 한 명도 퇴사를 선언했고, 일주일 만에 회사를 떠났다. 가장 오래된 동료는 아직 입사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9개월 차였는데 그 또한 1년 치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면 떠날 거라고 했다.


몇 개의 온라인 페이지 링크와 합쳐서 3시간도 되지 않았던 전화와 비대면 화상 미팅으로 싱거운 인수인계가 끝났다. 입사 2주 차에 팀장은 솔루션 제품 정보와 회사 조직도, 팀의 마케팅 및 세일즈 전략, 연간 예산, 온오프라인 마케팅 전략을 마스터하고 리드하길 바랐다. 매주 팀 회의에는 팀원들 앞에서 스피드 퀴즈를 풀듯 질문에 답하도록 시켰고 답을 맞히지 못하면 무시의 말을 던졌다. 모든 말은 두괄식으로 해야 했고, 다른 팀과 회의를 할 때에는 자기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말은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했다. 채팅창에는 그의 검열을 거친 메시지만 올릴 수가 있었다. 다른 팀 사람들을 흉보고 무시하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너무도 잘난 그분 앞에서 나는 무엇을 말해도 정답이 아니었다. 내가 힘든 건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아서라고도 했다. 오랫동안 그룹웨어만 사용하다 보니 새로운 협업 툴을 쓰는데 서툰 것도 나의 잘못이라고 했다. 입사 한 달 째에는 팀 동료들과 나의 업무 능력을 비교하며 내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지만 자기는 참고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던 분위기를 스타트업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탓으로 돌려보기도 하였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이상했다. 내가 좌절할 때마다 팀원들은 조금만 참으라고 새로운 직원이 와서 타깃이 변경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자기들도 겪어온 과정이라고 했다. 입사 2개월 차에는 나를 응원하는 동료들도 하나, 둘 퇴사하고 다른 팀의 리더들까지 나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팀의 리더는 더 위의 상사에게 이런 사실을 직접 말해보라며 자기가 미리 언질을 해두겠다고 1on1 면담을 권했다. 이미 협업하는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 더 이상 나의 자리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이때 나는 이미 또다시 퇴사의 카드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조언이 귀에 와닿질 않았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나의 자리에서 소멸되고 싶었다. "퇴사하겠습니다." 이 말  한마디면 모든 걸 끝낼 수 있었다. 싸워 이기고 싶지도 않았고 버티고 싶지도 않았다. 이럴 땐 그냥 빤스 런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블라인드와 다른 팀 팀원들을 통해, 나보다 앞서 퇴사한 동료들의 입을 통해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걸 여러 차례 확인한 뒤였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면담을 신청하고 사직서를 쓰고 책상을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낮에는 비대면 회식, 송별회, 현장 답사, 팀원들과 온라인 컨퍼런스를 듣고, 팀 스터디를 준비해야 했고, 밤이 되어서야 온전히 나의 업무 시간이 주어지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쌓여가는 업무와 미팅으로 하루 3시간을 자기도 힘든 나날을 버티며 나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면담을 신청해서 상황을 바꿔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면담을 하던 날 불안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 면담 시나리오를 짜고 관련 자료도 꼼꼼하게 준비했다. 마침내 1시간의 면담 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진 것도 없었다. 나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상사와 면담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상황이 더 나빠졌다. 또다시 나를 가스라이팅 하려는 팀장에게 나는 당당히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 후 인사팀과 면담에서 나는 "퇴사하겠습니다." 이 말만 했다. 그렇게 나는 꿈꾸던 회사에서의 생활을 접었다.


이따금씩 그때를 회상해보지만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다시 퇴사를 선택할 것 같다. "퇴사하겠습니다" 이 말은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가 어렵지 막상 뱉어내면 그렇게 후련하고 시원한 말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마구마구 뱉어낼 말이 아닌 건 잘 알고 있다. 일단 내뱉고 나면 후회가 따라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계가 위험해지거나, 원치 않는 백수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부모님의 한숨과 잔소리를 견뎌야 하며 애인의 우려의 눈빛과 친척, 지인들의 앞담화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 때 뱉어야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실패에 관심이 많다. 진심이건 아니건 꼭 한 마디를 보태어 당사자를 힘들게 만든다. 그 말을 뱉어내기까지 제일 힘든 사람은 본인인데 요즘 애들은 나약하다느니, 참을성이 부족하다느니, 곱게 자라서 힘든 걸 못 참는다느니, 성격에 문제가 있다느니, 버릇처럼 회사를 옮긴다느니, 상처 난 가슴에 한 번 더 무심하게 비수를 꽂는다.


퇴사와 실패는 같은 말이 아닌데도 꼭 같은 말로 읽히고 쓰인다. 그저 밥벌이 수단을 바꿨을 뿐인데도 자주 직장을 옮기거나 좋은 직장에 입사하고 얼마 못 지나 퇴사를 하면 실패자 취급을 해버린다. 그래서 퇴사를 말하기가 이리도 어려운 걸까? 실패할까 봐 늘 불안한 마음, 실패를 인정하기 두려워 버티는 마음, 그 마음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으면서도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아량을 베풀지 못한다.


퇴사와 실패는 같은 말이 아니다.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다고 해서 내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사람이 힘들어서, 더는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 싸우고 부딪히기 싫어서 피한다고 해서 실패자 취급을 받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돈은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벌 수 있다. 근데 마음을 너무 다치면 돈도 벌 수가 없고, 제대로 살 수가 없다. 번듯한 직장도, 높은 연봉도 복지도 내가 바로 서 있어야 의미가 있다. 우리는 돈 보다도 주변의 시선 보다도 내 마음을 먼저 지켜야 한다.


내일 출근이 두려운 당신에게, 도망치는 용기를!

도망치듯 이직과 퇴사를 반복하는 나와 당신에게 더는 빌런을 만나지 않는 행운을!


오늘 밤도 잠 못 들고 불안에 몰두하는 여러분에게 실패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감당하려는 용기만 있다면 지금의 불안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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