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체 바우어
연애편지 500통으로 남겨진 연인
카프카가 펠리체 바우어를 처음 보고 느낀 점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8월 13일 브로트를 방문했을 때에 책상 옆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마치 하녀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몸은 깡마르고 갈색 머리는 뻣뻣했고, 코는 못생겼으며 큼직한 광대뼈는 툭 튀어나와 있다. 거기에 목이 파인 헐렁한 블라우스를 입고 식탁에 앉은 모습은 영락없이 식모같이 보였다.”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 집에서 펠리체 바우어를 만났다. 처음에는 펠리체가 누구인지 조차 몰랐으며 그저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카프카는 펠리체와 무려 500여 통에 이르는 편지를 보냈다. 처음 3개월 동안에만 100통의 편지를 썼고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창작의 의욕을 북돋우게 되었는지 그 기간 동안 카프카는 여러 편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카프카와 펠리체의 만남은 발전되어 약 3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둘은 결혼을 약속했다. 펠리체는 카프카와 정 반대 성격으로 매사에 매우 긍정적이고 현실적이다. 펠리체가 카프카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카프카의 어둡고 우울한 작품의 분위기를 밝고 명랑한 펠리체가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카프카는 현실생활에 능하고 실용적인 펠리체와 결혼하면 사회적인 안정을 찾을 거라 기대했다. 오랜 고민 끝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혼했다. 카프카는 결혼으로 안정을 찾는 동시에 결혼은 글쓰기에 방해되어 작가로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며 미리 걱정하며 두려워했다.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결혼을 포기했다. 카프카는 펠리체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펠리체와 함께 하고 싶은 욕망이 컸지만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펠리체에 함께하는 미래에 매우 불안해했다. 무엇보다도 카프카는 고독에 길들여져 있어서 고독과 외로움 없이는 작가로서의 창작 활동은 끝이라고 여겼다.
카프카는 펠리체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작가로의 길 역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프카는 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카프카는 펠리체와 파혼 후 몇 개월 만에 교제를 다시 시작해 이듬해 또다시 약혼을 했다. 하지만 1917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펠리체와 어쩔 수 없이 헤어집니다.
펠리체 바우어는 카프카를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가도록 커다란 역할을 했다. 카프카는 펠리체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은 연애에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다고 판단했다. 결혼이 인생의 안정과 희망을 준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생에 걸림돌이자 삶의 족쇄로 여겼다. 카프카는 심각할 정도의 회피형 인간인 것 같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변화로 만들어지는 통제되지 못하는 미래 앞에서 늘 방향을 틀어 버렸다. 그는 어린 시절을 안정적으로 보내지 못했고 인간관계와 창작 활동을 병행하지 못했다. 사랑에 빠지면 일상이 행복해지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에만 매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문학을 함께 한다는 것을 시도조차 해보지도 못하고 머리 속으로만 고민하고 판단했다.
카프카는 극단적이었고 우울하고 불안한 정신에 건강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스트레스가 많아 수면의 질도 떨어졌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니 몸의 면역 체계 역시 무너졌을 거라 여겨진다. 카프카가 살았던 당시의 대기오염은 상상 불가였다. 산업혁명과 도시 여기저기에 공장이 세워지면서 대기 오염은 매우 심각했다. 특히 도시환경은 열악했고 정부나 산업 규제도 없는 극단적인 자본주의는 환경오염과 위생 문제를 일으켰다. 폐렴과 결핵은 오늘날의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이었다. 카프카가 펠리체 바우어와 헤어진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폐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