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 보리첵

스페인 독감이 맺어준 연인

by VIVA


1918년에 유럽전역에 스페인 독감이 퍼졌다. 14세기 중기에 유럽을 휩쓴 페스트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발생한 최악의 전염병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차 대전 말기였던 1918년 여름에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군 병영에서 독감환자가 발생하고 그해 8월에 사망자가 나오면서 급속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독감은 유럽 대륙에만 머물지 않았다. 1차 대전을 참전하고 미국으로 귀환하는 병사들에 의해 미국까지 확산되었다. 당시 일본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도 7백4십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전 세계에 약 2500만 명에서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최악의 유행성 질병이었다.


허약했던 카프카는 스페인 독감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오염된 도시를 떠나 프라하 근교로 요양을 갔다. 그곳에서 율리 보리첵을 만났다. 율리 보리첵은 프라하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는 다소곳한 여인이라고 알려졌다.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서정적인 감성이 카프카와 닮았고 조용하고 겸손해서 카프카의 마음이 저절로 열렸다고 한다. 병색으로 우울하고 지루한 일상에 따듯한 햇살 같은 잔잔한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역시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여겼던 카프카의 아버지는 율리 보리책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분노했다. 율리 보리첵의 아버지는 당시의 도시 최하층에 해당하는 구두 수선공이었다. 헤르만 카프카 자신이 결혼을 통해 사업 자금을 얻고 처가의 도움을 얻었던 것처럼 아들도 그렇게 하기를 강요했다. 이 결혼 허락할 리가! 카프카의 아버지는 율리 보리첵과의 결혼을 결사 반대했다. 카프카는 또다시 자신을 막고 서 있는 커다란 장벽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율리 보리첵은 자신의 작품을 풍부한 감성을 이해해 주었고, 섬세한 감성의 결이 서로 통했다.


카프카는 아버지의 명령(?)에 반항했다. 그는 율리 보리책과 약혼을 감행했다. 가족들의 반대는 너무나 뻔했지만, 자신의 인생을 향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카프카는 1여 년을 아버지의 반대에 맞서며 율리 보리첵과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꿈꿨지만, 안타깝게도 약혼을 한 이듬해,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결국 파혼하고 만다.

당시 복잡했던 카프카의 심정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 잘 드러나는데, 카프카의 또 다른 정신적인 회피처, 밀레나 예젠스키가 카프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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