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어 버린 벌레
그레고어는 멋진 영웅이나 현재보다 더 나은 모습이 아닌 벌레로 변신했다. 주인공이 이 변신을 원했다는 직접적인 내용은 없다. 읽는 독자의 심정에 따라 해석의 여지만 있을 뿐이다. 그레고어는 자기가 맡은 역할에 매몰되어 자신의 삶에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기계처럼, 꾸역꾸역 버티며 마치 숙제를 해 나가듯 삶을 헤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벌레로 변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리를 공중에서 허우적거린다.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도중에도 출근하지 못한 것이 걱정된다. 출근하지 않는 그레고어를 찾아 집까지 상사가 찾아온다. 그는 차마 자신이 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신을 해고하지 말고 지금까지 자신의 실적을 고려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의 모든 노력은 헛되이 돌아갔다. 방에 홀로 고립되고 만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원하던 잠도 실컷 자고 푹 쉬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 석 역치 않다. 처음에는 겉모습만 벌레로 변했는 줄 알았는데 습성도 점점 벌레처럼 변한다. 목소리도, 입맛도, 행동도 벌레 그 자체였지만, 자아에 대한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욕망이 깨어났다. 벌레로 변신하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탈출 맞기는 하다. 그렇다면 변신의 대가는?
자신의 어깨와 등에 짊어진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고픈 무의식적인 욕망이 '벌레'로 실현되었다. 일과 가족 부양의 의무와 책임을 훌훌 털어내고 싶었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만약 그레고어가 히어로나 엄청난 부가 하늘에서 떨어져 부자가 된다면 가족들은 더더욱 그레고리의 등에 들러붙어 등골을 파 먹는 등골 브레이커가 될 것이다. 그레고어가 무능력해져야, 돈을 공급해주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야 가족에서 해방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레고어가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이끌려 가는 수동적인 성격에서는 이것이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었을지도 모른다.
벌레로 변신하고 모든 의무와 책임에서 해방되었지만, 동시에 그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또한 벌레로 변신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벗어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욕망에만 집중하 나머지 다르 것을 차마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는 그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가족들과 따듯한 말 한마디와 다정한 눈빛을 나누고 싶어 했다. 하지만 벌레고 변하고 나서 가족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게 된다. 벌레로 변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드러난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진짜 욕망, 그리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사에 관한 사유를 시작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특이점을 뽑는다면 정신세계 그리고 언어의 사용이다. 오직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고 언어를 구사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사유와 언어의 결과물이다. 인간이기에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벌레가 되어서야 새로운 감각과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레고어는 무언인지 의지할 것을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가 나직한 소리를 내면서 수많은 작은 발들을 깔고는 마루 위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쓰러지자마자 그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육체적 쾌감을 느꼈다.”
인간은 영혼이 깃든 동물이다. 가장 기초족인 인간의 욕구는 동물의 욕구와 다를 바 없지만, 동물처럼 그대로 날것의 욕구를 드러내고 해소하려들면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런 욕구와 욕망은 '인간이기에' 다듬고 통제하고 알맞게 드러내고 채워야 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동물의 욕구를 따라간다는 건 인간 세상의 상식을 너머 범법 크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의 영역으로 빠지게 된다. 이러 모든 욕망에 대해서 그레고어는 벌레로 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인간일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벌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다니, 그레고어는 벌레 일까 아니면 인간일까?
그레고어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자신의 방에서 가구를 빼내려 한다. 이 둘은 가구가 빠지면 그레고어가 자유롭게 기어 다닐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레고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주변이 인지했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자신은 인간이기에 가구가 필요하다고 그 행동을 멈추게 하려 한다.
“가구를 죄다 치워버린 빈 방이면 물론 마음대로 기어 다닐 수는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이내 자기의 인간으로서의 지난날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두 모녀가 자기고 있는 좋은 의향을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레고어가 전신으로 가리고 있는 이 그림만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레고어는 몸만 변했을 뿐 자신은 여전히 인간이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이 인간이었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의지와 다르게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은 당기지 않고 오히려 썩어가는 음식과 냄새나는 치즈에 식욕을 느낀다. 심지어 바닥과 천장을 기어 다니는 능력에 썩 만족해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레고어는 인간일까? 벌레일까?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은 잠을 자고 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다행히도 본래의 자아는 자신이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성별·인종·국적에 관계없이 자고 나면 외모가 바뀐다. 주인공 자신도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전혀 모른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자신의 모습에 주인공도 보는 관객도 혼란스럽다. 그러던 중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 여자와 계속 만나고 싶어서 자신의 모습이 바뀌지 않도록 며칠 밤을 새운다. 하지만 잠을 기이지 못하고 일어나니 겉모습이 바뀌어 있다. 그날은 여자 주인공과 출근 전 모닝커피를 약속 한 날이다. 주인공은 약속 장소에 가지만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여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여자는 실망하고 회사로 출근한다. 주인공은 그 여자를 잊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의 이런 외모 변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면 어떻게 될지 고민한다. 그 사이 주인공은 여러 모습으로 변하다 여자가 다니는 회사의 일용직으로 일을 한다. 주인공은 일전에 만났던 그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여주인공은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마음이 동했는지, 그 남자의 작업실에 가본다. 그곳에서 외모가 바뀌는 주인공의 모습을 목격한다. 이제 여자 차례다. 이 남자를 받아 줄 수 있을까? 노력해 본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인파 속에 묻혀 있어도 외모가 달라졌어도 이제 한눈에 찾아낼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묻는다. 어떻게 바뀐 외모에도 나를 나로 알아볼 수 있느냐고. 이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하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레고어는 그레고어다. 외모만 벌레다. 자신도 그리고 가족도 알고 있다. 그가 아들이고 오빠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점점 그레고어를 '벌레' 취급한다. 그리고 그레고어도 '벌레'의 습성이 나온다. 모든 것을 인지하고 의지적으로 사람처럼 행동하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왜 그리고 어떻게 벌레로 변했는지 이유를 모르기에 다시 사람이 되는 방법도 모른다. 습성과 욕구까지도 벌레처럼 변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동생이 켜는 바이올린 소시를 듣고 감동할 줄 아는 인간임을 안다. 그런데 주변은 그를 벌레로만 본다. 그에게 남아 있는 옵션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