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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Oct 25. 2024

카프카여 이젠 안녕

에필로그

     <변신>에서 변신한 걸 정리해 볼까? 우선 그레고어 남자 주인공이 외향이 벌레로 변했다. 첫 문장부터 확 보이는 명백한 변신이다.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 수동적으로 변한 그는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조차도 받아들이고 만다. 그래서 벌레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상황과 자신의 상태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가보려 한다. 그러면서 진짜 벌레처럼 되어 버린다. 두 번째 변신은 변심한 여동생이다. 여동생은 집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그레고어가 벌레가 된 후에는 집안의 중심 역할을 한다. 오빠와의 관계를 독점해 버린다. 부모와 그레고어가 직접 대면하는 일을 막는다. 그러면서 오빠 벌레를 버리라고 소리까지 친다. 벌레가 사라지고 나서는 어느덧 여동생이 소녀에서 어여쁜 성년으로 변해 있다. 그의 아버지는 결혼할 신랑감을 찾아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의 집안 분위기는 음울하고 무기력했다. 흑백 영화처럼 색깔 하나 없이 회색빛의 분위기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집안에 색이 하나씩 입혀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희망 가득한 모습으로 분위기 변신이 된다.


    <변신>은 인간이 물질에 지배받아 본질적인 인간성과 감정이 얼마나 무디어지는지 그 결과 가장 근본적인 관계인 가족과 거기에서 확장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태어난 작품이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역사가 발전 없이 반복되는 듯하다. 물질의 세계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삶은 편안하고 풍요로워지지만 마음은 점점 더 가난해져 마음이 없는 존재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 잘 모르겠다. 그건 각자의 문제다. 단지 나는 이런 시선과 견해를 전달하면서 나의 존재를 깨워 눈뜨게 만든다. 문제만 제시하고 해결책은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비난해도 괜찮다. 문제를 문제라고 보는 것이 우선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누군가가 문제라고 이야기한들, 본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세상의 선과 악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개인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며  이전에 보도 듣지도 못한 갈등들이 표면으로 나와 가끔 뉴스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진짜 문제, 그 내면에 깔린 본심이 무엇인지 이제는 서로 솔직하게 말하고 드러내야 할거 아닌가. 쓰레기통에서 냄새가 나면 버려야 하는데 그걸 뚜껑 덮어 버리고 나 몰라라 하면 그 공간은 곧 악취로 뒤덮인다. 내 마음이 쓰레기통이 되기 전에 그 안에 담긴 근본적이고 솔직한 욕망에 그리고 그 실현 방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카프카에 대해서 A4  용지로 100 매 가량을 썼더랬다. 아주 오래전에. 써놓고는 자신감이 없어서, 세상의 평가를 받는 게 두려워서, 폴더 속에 숨겨 두었다. 그걸 꺼냈다. 이별하고 싶어서. 아픈 손가락처럼 남아 있는 원고들을 분류해서 재활용가능하다면 이렇게 공개하든가 아니면 과감하게 휴지통으로 보낸다. 한없이 자신 없고 소심하고 예민하기만 했던 초보 작가 시절, 출판사 미팅을 하던 도중 관계자 한분이 불쑥 그랬다.


'괜찮아요, 첫 번째 책은 다 쓰레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글을 쓰실 텐데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딨 어요'


    이 말이 그때 나에게는 '작가님 글은 쓰레기예요'라고 들렸다. 그 뒷문장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성을 되찾고 기억을 복기했을 때 깨달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쓰레기'라는 단어에 꽂혀서  앞이 캄캄하고 귀가 먹먹했다.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메일과 문자로 출판사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 용기 내어 환한 미소를 장착하고 미팅에 나갔건만 돌아오는 길은 깜깜한 들판을 별빛에만 겨우 의지해 집을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  출판사가 여러 번 연락이 왔지만, 결국 그곳과 출판계약을 맺지 못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 편집자와 오해를 풀었냐고? 그럴 리가. 속앓이를 하고 이불킥을 하면서  용기를 내봤지만, 차마 그 오해를 풀어낼 용기가 없었다. 결국 다른 출판사와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출판을 하고 상도 받았지만, 이런 기억으로 카프카의 글은 진심 나에게 판도라 상자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용기 내어 이 상자를 열었다. '와... 진짜 쓰레기네...' 얼굴이 화끈거리다. 글쓰기 콘탠츠에서 강조하는 '하지 말아야 것' 투성이었다. 그 원고를 기본으로 '퇴고는 이렇게 한다', '교정은 이렇게 한다'라는 책을 내도 괜찮을 듯했다.

    고무장갑을 차고 쓰레기통을 옆에 두고 계속 쳐내고 버리고 쳐내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몇 개의 짧은 에세이로 브런치에 올렸다. 유튜브 도시 책방에는 더더더 짧은 컨탠츠도 있지만, 여전히 난 활자 미디어를 좋아해서, 한 번 더 울어 먹는다, 애증 어린 카프카여, 이젠 안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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