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a kim May 21. 2020

옹졸한 나를 우연히 직시했다

자신을 견지하면 모든 불안함은 사소해진다

옹졸한 나를 우연히 직시했다

- 자신을 견지하면 모든 불안함은 사소해진다



옹졸한 내 모습을 우연히 직시하고 말았다. 바라보고 싶지 않아서 애써 초점을 다른 곳에 두었는데, 거울 앞에 서있는 나는 못난이가 되어 있었다.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문화적 등등 모든 부분에서 타격을 입자 마음의 여유를 잃었고 결국 나는 옹졸해져 갔다. 1일 1초 웃는 얼굴 영상을 찍던 것은 애초에 중단되었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되니 그 웃음도 가식적인 것 같아 내가 나를 견디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투쟁으로부터 허우적거리고 있을 텐데. 그래도 사람마다 강인하고 취약함은 다 다르거늘, 나의 취약점은 무엇이길래 유난히 무르고 약해져가다 못해 좁아지고 있는가.


최근에 간소화된 MBTI 검사를 다시 해봤다. 20대엔 ESTP였는데, 세상에 지금의 난 얼마나 험난한 항해를 하고 있는지 30대에 들어서서는 ENFP를 거쳐 ENFJ가 되었다. 재미 삼아하는 분석검사이지만 그나마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싶을 때마다 도움을 줘서 나름 너른 마음으로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심리검사의 재미는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맞아. 이거 나야. 소름! 누가 내 이야기를 여기에 썼어!"


ENFJ 유형의 사람은 자신의 생활 영역을 포함하여 세계 무대에서까지도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하려는 끊임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타심의 기반이 과하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공동의 선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에게 무력감의 딜레마를 느끼게 된다. 여기서 성숙하게 대처한다면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감의 사회운동가가 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였으므로 이하 생략. 비슷한 성격의 유형이라고 알려진 미셸 오바마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비교는 필요가 없지만 굳이 하자면) 그녀는 나와는 비할 수 없이 더 많은 벽과 험난함을 마주한 삶을 지냈다. 그녀와 나와의 또 다른 차이점은 자신의 주체가 오로지 자신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힘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과 요건에서 생긴 나의 굴곡의 삶. 스스로는 대수롭지 않고 하찮게 여기는 그 굴곡이 곧 그녀에게는 버티는 힘이 되는 것이고, 옹졸한 버전의 나에게는 무너뜨리는 힘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탯이 붙은 이름표를 뛰어넘는 방법은 곧 스스로가 자신을 옳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요즘의 내게 초점도 맞추고 싶어 하지 않으니 옹졸 모드는 당연지사인 셈인 거다.


사실 얼마나 옹졸하든, 또 얼마나 관대하든 이번 생애의 목표로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변함이 없다.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을 보면서 여전히 내 목표가 그렇다면 나를 우연히가 아닌 유념의 시선으로 직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내 행복의 주도는 내가 쥐고 있어야 하니까. 밉고 못났더라도 옹졸한 나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자꾸만 좁아지고 아래로 떨어지는 내 시선을 의식적으로 멀리 보기로도 했다. 내가 가진 굴곡과 이타심의 삶이 곧 다른 이들과 다른 나만의 힘이 되고, 그 힘으로 버티기로 했다. 균형감을 갖고 이 경험이 내 미래를 결정짓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큐에 나온 한 학생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자신을 견지하기 시작하면 모든 불안함은 사소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