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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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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Oct 24. 2022

약간의 뻔뻔스러움이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_서점

#03


예전에 일하던 직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만두고 나올 당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마음의 타협을 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완전히 다른 조건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는 직장도 있겠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서점 일과 그곳의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재입사 제의를 받아들인 순간부터는 예전에 타협하지 못했던 부분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큐레이션이었다. 파트 구분 없이 일했던 A서점에서 좀 더 세분화된 기업형 서점에서 일하고 싶어 퇴직했었고, 기업형 서점이며 한 파트를 맡아 세밀한 작업이 가능했던 B서점에서는 도서 기획이나 큐레이션 진열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것이 좀 더 원활한 C서점으로 이동했었다. B서점은 재고 보유량과 물류의 이동이 원활한 편이기는 했으나 북 큐레이션을 위주로 업무를 진행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입고와 단순 진열을 하기도 바쁜 엄청난 수량의 책들이 쏟아져 들어왔기에 서점 내에서 여유롭게 나의 파트를 다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평대나 서가도 오래된 연식으로 인해 정돈된 모습 이상의 구성은 하기 힘든 상태였다.


사람들이 오프라인 서점보다 편리한 온라인 서점으로의 이동이 증가하자, 그나마 있는 오프라인 서점들은 방문 고객의 눈길을 더 잡아두기 위해 기획도서 및 콜라보 진열, 독서 인구를 늘리기 위한 책 보는 문화를 내세운 편리성의 확보 등등이 가능하도록 급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한 변화를 내가 다니고 있는 서점에도 적용해보고 싶었지만 그 업무를 위한 시장조사라던가, 집기를 활용한 책 진열이라던가, 본인만의 분류로 구성한 서가 등을 진행해 보기에는 하루하루 책 정리하기도 바쁜 날들이었다. 쉬는 날 부지런히 시장조사를 다니며 해보고 싶은 진열 도서 목록이나 주제를 정해 나름의 평대 기획을 실행하기는 했었으나 밀려들어오는 도서 물량에 의해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아예 그런 사항이 특화된 곳으로 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많은 회유를 고사하며 이직한 C서점에서는 그 분위기에 맞추어 구성과 진열을 하며 하고 싶었던 것을 쏠쏠히 해보는 형태로 일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지점의 오픈 업무와 점장까지 해 보았으니 어쩌면 인사, 운영관리 외에 순수한 서점 업무적인 면에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부분을 거의 다 해 본 상태였다. 동시에, 코로나 시국의 영향으로 B서점의 특성 중 하나였던 엄청난 도서 물량의 입고가 수량면에서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매출 감소로 인한 영향이었겠지만 지나친 물량의 입고로 출판사와 서점 간 부담감이 커지는 형태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입고 루트를 유지한 채 적정 물량을 들여오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C서점에서 다소 아쉬웠던 거래처나 도서 종수의 확보가 B서점에서는 원활한 편이었다. 물론, 내부적인 문제로 원활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많은 종수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은 B서점이 더 나은 상태였다. 그동안에 얻은 경험으로 더 많은 책을 다루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돌아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좋게 봐주고 제의해 준 사수에 대한 은혜갚음인 동시에 일하는 조건이나 불만사항에 대한 타협보다는 내가 재미있을 수 있는 환경을 택했다는 것, 현재는 그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예전부터 그곳에서 꾸준히 일해왔던 동료에게는 변덕끼 있는 이미지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해보기 위해 약간의 뻔뻔함으로 무장한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하려 한다. 내가 경험했던 것을 다른 이와 나누며 해보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소박한 큐레이션이나 기획 진열이라도 칭찬해주고 함께해주는 그들이 좋다. 일적인 인연이기는 해도 다시 받아들여 준 그들이기에 미안함보다는 뻔뻔함으로 무장한 일 잘하는 동료가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뻔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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