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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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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Oct 25. 2022

단순할 수도, 복잡할 수도

하고 싶은 대로_서점

#04


정해진 위치에 책을 정리하는 업무는 서점 일 중 가장 기본이다. 그날 하루 입고된 책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작업은 단순하면서도 세심한 작업이다. 같은 칸에 출판사 가나다순으로 놓을 것인지, 소분류 별로 놓을 것인지, 자리가 없다면 다음 칸이나 옆칸으로 미룰 것인지, 기존의 것 중에서 반품할 것을 찾을 것인지, 혹은 위에 그냥 올려놓을 것인지. 한 해 두 해 경력이 붙을수록 이 단순한 작업은 진정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점 일을 처음 시작했던 첫 번째 서점에서 진열 자체에 관심이 생긴 것은 일한 지 6개월 정도 된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도서 입고 작업을 하던 중 신간을 등록하다 문득 비소설 서가와 소설 서가, 그리고 주변의 입 서가를 쳐다보게 되었다. 신간의 분류를 정하고 위치를 등록하기 위해 잠시 훑어본 것이었는데 다른 생각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비소설과 소설의 서가 자리가 바뀌면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서점의 위치를 통째로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더 좋지 않을까' 등등


남들이 보고 있었다면 잠깐 멍 때리는 정도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날은 내 안에서 일어난 혁명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그 뒤부터는 책 정리하는 틈틈이 서가 배열을 바꿔보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사장님이 분류 위치를 정해 놓은 곳을 노려보며 다른 위치로 바꾸어 보고 싶은 생각에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부지런히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스트 평대에서 시기별로 순위가 바뀐 책을 재정리하는 것 외에는 모든 서가와 평대가 사장님의 지시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위치를 바꾸어 볼 수 없었다. 만약 어떤 위치를 변경하고 싶다면 그럴만한 이유로 사장님을 납득시켜야 하고 시기도 조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나름의 경영철학으로 주관이 뚜렷하신 분이었으므로 경력이 거의 없는 내가 이래저래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두 번째 서점에서 일하며 첫 번째 서점에서 못했던 '내 마음대로 서가 진열을 바꾸어 보는 것'을 하게 되었을 때, 신간이나 베스트 도서의 회전을 위해 평대를 재 진열 시 내가 생각한 모음 진열의 형태로 바꾸어 보았을 때, 광고 협찬 도서들을 모음 진열하며 다른 파트의 책들과 같이 진열된 내 파트의 책을 보았을 때, 내 안의 책과 관련한 진열을 담당하는 뇌 부분은 연일 풀가동되느라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모음 진열에서 벗어나 관심 있는 이슈에 맞게 주제를 정하고, 제목을 정하고, 관련된 책을 찾아보며 추가 주문을 넣는 일에 관심을 보일 즈음 나는 깨달았다. 앞으로 뭘 하든지 간에 이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는 글렀다는 것을. 혹시나 서점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겪었던 이 매력적인 작업을 잊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느낌적 느낌을 말이다.


완성된 기획 평대들은 소소한 주제의 것들이 많다. 기가 막힌 특별함을 쫓아가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가끔 메모해 놓은 것을 참고하면서 서점을 찾은 분들이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을 하고 큐레이션을 한다. 소소한 결과물일지라도 작업 과정에서 느꼈던 즐거움이나 주제별 의미가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그것이 곧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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