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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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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Dec 17. 2019

책을 본다는 것, 사람을 본다는 것

발길이 닿은 곳_서점


책을 많이 읽은 편이고 좋아하지만 특별히 관리하며 보관한다던가 하는 경우는 없었다. 무언가를 먹으면서 보다가 본의 아니게 튄 적도 몇 번 있고 보면서 졸다가 구겨진 책도 있고 더 어린 시절에는 다 본 그림책으로 집 모양 쌓기 놀이를 하기도 했었다. 일부러 망가뜨린 적은 딱 한번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함께 대여한 만화책에 있던 예쁜 주인공들을 몰래 종이 인형처럼 몇 개 오려내어 스크랩을 해놓았었다. 친구도 같이 오렸으니 조금만 넘겨보면 들통날 일이었다. 대여일 마지막 날에는 책을 굉장히 빨리 돌려드리고 쏜살같이 집으로 왔다. 스크랩한 주인공들을 꺼내 보았지만 책 안에 있을 때만큼 예뻐 보이지 않았다.


다음에 갔을 때 보니 오려낸 책은 새 책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여점 사장님은 그다음 권을 빌리며 대여 등록을 할 때 ‘깨끗이 보고 가져와야 해’라고 말씀하신 게 다였다. 아마 내가 오려낸 책을 가져다 드릴 때 얼굴에 표가 난듯했다. 알고 계셨지만 모른 척해주신 것이었다. 학생 단골이기도 하고 처음 그랬으려니 하며 한 번은 용서해 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집에 오면서 눈물이 났다. 스크랩했던 주인공들은 다 꺼내어 종이에 싸서 버려 버렸다. 이후에는 그렇게 행동한 적이 없다. 요즘에는 대여점 체계가 거의 없어졌지만 책을 구입할 때면 가끔 생각나는 철 모를 무렵의 회상이다.


책을 구입할 때  책의 상태를 본다. 하지만 까다롭지는 않고 얼핏 보아 괜찮아 보이면 그냥 구입한다.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이라 겉표지 상태는 덜 예민한 성격인 듯하다. 친구 중에는 책을 구입하면 투명 비닐로 일일이 다 포장하는 아이가 있었다. 책이 바래거나 찢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너무 싫다고 했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따라 하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책을 대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해온 것 같다. 어쩌다 한 번쯤 어린 시절 장난으로 책을 망가뜨려 본 적은 있지만 커서도 일부러 망가뜨리는 사람은 없으리라, 예전의 친구처럼 책을 까다롭게 아끼는 사람도 있지만 대게는 나처럼 무난히 책을 볼 것이다, 나는 평범하게 책을 보는 편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서점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의 생각에 따라 책을 구매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서점 근무 이후 보게 된 책을 대하는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은 ‘나’라는 별에 떨어진 소행성급 충격으로 다가왔다.


종이와 물은 상극이라는 것을 잊은 사람(주로 아이스 음료를 책 위에 그대로 놓고 보는 경우가 많다), 평평하고 적당한 두께의 책을 서가에서 뽑아 바닥에 깔고 앉은 뒤 자신이 고른 책을 보는 사람, 온몸의 무게를 실은 팔꿈치를 평대에 있는 책들에 누르며 보는 사람, 떨어뜨린 책을 그대로 놓고 가는 사람, 비닐로 포장된 책을 직원에게 문의 없이 뜯어서 보고 구겨진 비닐과 함께 서가에 쑤셔 박아 놓는 사람, 본 책을 다른 책 위에 던져놓고 가는 사람, 침 발라가며 보는 사람, 본인이 보던 페이지까지 접어놓은 후 원래 위치와는 상관없는 본인만 아는 구석자리에 숨겨놓고 가는 사람, 서가에서 책을 빼다 찢어 뜨리고 모른 척하는 사람, 여러 가지 책을 한 번에 빼서 대충 보고는 본 자리에 다 쌓아두고 가는 사람, 책 내용을 도촬 하거나 학습지의 답안지를 뜯어가는 사람,..... 기타 등등.


책을 사기 전에 고르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열불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지금은 모른 척하거나 옆으로 슬쩍 가서 조용히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서점 근무를 하게 된 초기에는 손님과 참 많이도 싸웠다. 내가 기분 나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제재를 했으니 손님들도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결국, 양쪽 다 기분 나쁘고 싸울만했지만 서점은 오는 손님들에게 을의 입장이다. 경력이 늘어날수록 기분 나쁜 마음을 다스리거나 그러한 행동을 하는 손님과 적당한 타협선을 찾거나 하는 방법이 늘어난다.


모든 일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만 서점 근무를 하면서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특별히 책을 아낀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서점에 와서 책을 대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유 별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당연한 결과 이겠지만, 낯섦에서 오는 고객응대는 굉장히 형식적으로 변한다. 적당한 선에서 형식적으로, 어쩌면 그것이 최선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형식적인 마음을 되돌려 놓는 것도 ‘손님’이다. 물론, 앞의 경우와는 다른 경우의 손님들이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책을 소중히 한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는 분들이 있다. 곱게 보아주시고 곱게 놓아주신다. 책을 소모품이 아닌 정말 좋아하는 자신의 삶의 일부로 대해 주시는 분들을 보고 있자면 므흣하게 기분이 좋다. 같이 온 어린아이들이나 동료, 친구들에게 그러한 자신의 분위기를 전염시켜 주시는 분들은 서점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혜택을 다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시시때때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서점이라는 놀이동산에서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말이다.

책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마음의 타협/적당한 선에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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