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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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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Dec 26. 2019

선물

발길이 닿은 곳_서점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있고 그 날은 선물을 받는다는 것을 인지한 뒤 다음날 받은 선물에 기뻐했던 최초의 시기는, 기억하건대, 초등 1학년쯤이었던 듯하다. 당시 친구들끼리 그런 날이라더라 하는 이야기를 했고 산타클로스라는 존재에 대하여 상상을 해보고 큰 양말을 걸어두기 위해 가지고 있던 양말 중 가장 잘 늘어나는 것을 찾아 머리맡에 걸어놓았었다. 유치원을 다닌 친구들은 확실히 그런 정보에 대하여 빨랐지만 나는 유치원이 아닌 동네 미술학원을 다녔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반년 전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 터라 유치원 중간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미술학원을 다닌 것이었는데 그다지 친한 친구들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들어가 사귄 친구들에게 듣게 된 크리스마스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집안의 종교가 불교여서 딱히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케이크를 사 가지고 집에 가던 시절은 더더군다나 아니었기 때문에 빨간 옷을 입은 덩치 큰 선물 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상상력을 마구 자극했더랬다.


양말을 찾고 잘 보지 않던 티브이도 켜놓고 캐럴을 흥얼거리며 산타할아버지 운운하는 모습에 부모님은 그날이 오고야 말았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날따라 아빠는 늦게 오신다고 했던 것 같고 엄마는 동생과 나에게 밥 먹고 일찍 자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다. 2살 어린 남동생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듣고 와서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고 우리는 모종의 합의하에 방 정리까지 했다. 그리고 양말이 잘 걸려있는지 확인한 뒤 잠이 들었다. 집에 굴뚝이 없다던가, 아파트 2층에 거주하고 있다던가, 창문이 잠겨있다던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왠지 그냥 주실 것 같은 느낌적 느낌으로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일어나자마자 확인 한 머리 위쪽에 걸어둔 양말에는 선물이 없었다. 2층 침대 위에서 자고 있던 동생도 양말에 선물이 없다고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큰 실망감도 잠시, 책상 위를 보자 산더미 같은 선물이 쌓여 있었다. 내가 놀라는 소리를 듣고 동생도 2층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듯 내려왔고 우리는 책상에 있던 선물들을 확인했다. 당시 유행하던 장난감, 인형, 과자 종합세트를 손에 쥔 동생과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달려갔고 그분들은 놀란 척을 하시면서 우리가 착해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많이 주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내년에는 더 착한 어린이가 되리라 다짐했고 그다음 해가 왔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호기심인지 우리의 산타는 잠든 척하는 동생과 나의 작전에 말려들어 존재가 들통나고 말았다. 그래도 동생과 나는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하거나 실망감을 표출하지 않았다. 산타 할아버지도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다 다닐 수는 없으니 부모님에게 맡기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말 걸어놓기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해까지 계속했었다. 비록 초등 4학년 때부터는 양말 속에 현금이 들어가 있었지만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산타가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 있던 익명의 산타 씨는 선물 사 오는 시간을 놓쳐 현금을 넣어둔 것이었고 동생과 나는 조용히 지갑에 ‘선물’을 챙겨 넣었다.


선물이 무엇이던 현금이 얼마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종교가 불교인 것도, 나이가 들어가며 산타의 정체에 대하여 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크리스마스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선물을 주고받고 맛있는 것을 먹고 나보다 힘든 이들을 위해 봉사나 기부금을 주는 소식이 많아지는 시기이며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질 수 있었던 날.  산타가 주는 선물과는 별개로 부모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휴일이기도 했던 그 날은 나가서 밥을 먹고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한 가지씩 골랐는데 대개 책을 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책을 받기도 하고 단권으로 된 책을 받기도 했다.  선물 자체도 좋았지만 행복한 그 분위기가 좋았다.


서점에서 크리스마스는 일종의 시즌이다. 많은 익명의 산타들이 유아 도서나 어린이용 책을 구입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날 서점을 찾는다. 그리고 많은 부모님들이 당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책 선물을 고른다. 서점 직원들은 판형이 자유로운 아동용 도서를 이리저리 진열하고 판매된 책을 보충하며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낸다. 마음에 정해둔 책을 구입하러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 날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 부모님이 원하는 책 같은 책을 고르는 아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장난감과 같이 있는 책이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로 가득 찬 스티커들, 혹은 만화책 등을 고르며 부모님의 속을 태우기도 한다. 반면에 책을 제법 읽은 아이들은 본인이 보던 시리즈물이나 새로 나온 동화책을 고르기도 하지만 어린이 인문이나 학습 동화책을 샀으면 하는 부모님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선물 포장을 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지만 직원들이 바쁜 관계로 선물 포장을 해줄 수 없는 서점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못 해 드린다고 이야기해도 이해를 해주는 분들이 더 많다. 더불어, 돈이 나가고 아이들과 함께 다니느라 힘들지만 가족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서 좋은 마음, 이해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평소보다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의 나처럼 두 번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도 있을 것이고 산타 할아버지 혹은 부모님 둘 중 하나에게만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도 있을 것이다. 큰 것을 받던 작은 것을 받던 그 날의 분위기에 들떠 행복에 겨운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옛 생각이 나서 나까지 덩달아 즐겁다. 책을 사도 좋고 사지 않아도 좋다. 그저, 서점을 찾아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갈 수 있기를 바래어 본다.


그나마 말 잘 듣고 순하던 시절/비평 없이 책을 읽던 천사같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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