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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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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Jan 31. 2020

분류 그리고 미련

발길이 닿은 곳_서점


서점에서 일하게 된 지 15일째 되던 날 사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예술 분류 코너에서 피아노 서적을 출판사별로 모은 뒤 시리즈별로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피아노 책은 일반 단행본에 비하여 얇고 크기가 크기 때문에 손님들이 본 뒤 다시 서가에 집어넣기 까다로운 책들 중 하나이다. 그 때문에 항상 어질러져 있는 곳이지만 매일 정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한 달에 한번 정도 날을 잡아 정리하고는 했는데 그날이 그날이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실장님이 나에게 정리하는 일을 시켰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친 덕분에 출판사나 시리즈, 레벨 단계 등에 제법 익숙했기에 마음먹고 대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큰 분류를 잡고 정리, 그 안에서 다시 세분류 정리, 이런 식으로 하고 있었는데 거의 다 끝나갈 때쯤 사장님이 호출을 한 것이었다. 사무실로 이동하는 중 대리님이 넌지시 사장님이 내가 일하는 것을 CCTV로 보시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일하는 패턴을 지켜본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별생각 없었던 것 같다.


“ㅁㅁ씨, 이제 입고 잡아.”

“네?”

“실장한테는 이야기했고 대리나 누가 가르쳐 줄 거야. 주의할 점 몇 가지만 알면 입고 별로 어려운 거 아니니까 일단 시작해.”

“아, 네.”


업무 지시 내용은 그게 다였고 거래처별로 무슨 책들이 들어오는지 아직 익숙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렇게, 입고 잡는 책상 위로 던져졌다. 서점마다 업무를 배워나가는 방식은 다 틀리지만 이 서점의 경우는 생초보 수습의 경우 3개월을 잡고 일을 세밀히 배워나가는 편이었다. 사장님이 잘 보셔서인지 약간의 변덕이 있으셨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던 입고의 세계에 처음 발을 디밀었고 더불어 분류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도서들의 분류는 출판사에서부터 정해져서 나오지만 서점에 들어와서 그 서점의 서가에 들어가는 작업에서는 세분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서점의 형태나 서가 형태에 따라서 인문 도서를 사회 정치나 심리 쪽과 다 같이 묶어서 정리하는 곳도 있고, 중분류에 충실히 세분류를 나누는 곳도 있다. 맨 처음 일했던 서점의 경우 인문 코너를 너무 세분화하면 골치 아프다? 는 사장님의 직설 표현에 의하여 고전 철학 쪽을 제외한 나머지 인문 서적들이 출판사 가나다 순으로만 정렬되어 정리되었다. 반면에 아동 분류 도서들은 소설 쪽 도서는 창작/고전/판타지 등으로 나누고 비소설 쪽 도서는 아동 자기 계발/교과서 도서/학습동화 등으로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동이 아닌 쪽의 소설과 비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과 비소설로만 나누었고 경제 분야의 도서는 분야에 따라 세분류 해두었었다.


지금 생각하건대, 서점에서 일하고 싶어 들어온 직원 희망자나 아르바이트생들이 수습기간 동안 책 정리를 할 때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부분이 도서의 분류라고 생각한 사장님이 그나마 분류가 쉬운 곳은 세분류를 하고 분류하는 기준이 까다로운 곳은 그냥 통으로 묶어두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장님이 분류가 쉽다고 생각하여 세분류 해둔 경제코너도 분류에 어려움을 겪는 초보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오면 분류가 다른 책들이 섞이는 것은 시간문제였었기 때문이다.


웬만큼 나이가 들어서 들어갔기 때문인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보는 취향 때문인지 분류에는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정리 작업을 했었기에 입고를 잡으면서도 도서별 분류를 하고 서가 위치를 잡는 작업은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애매한 분류의 도서는 본인의 판단대로 분류하거나 인터넷 서점을 참고해 보라는 사장님의 언급이 있었기에 정말 소신껏 분류를 하고 입고 작업을 했다. 다행히 사장님께 불려 가 분류에 대하여 잔소리를 들은 적도 없어 이게 체질인가 하는 자만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분류가 애매해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서점 일이 익숙해지고 다른 서점으로 직장을 옮긴 직후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 직원이 파트를 나누지 않고 다 같이 관리하던 첫 서점에 비하여 두 번째로 옮긴 서점은 도서 파트별로 담당자가 정해져 있고 그야말로 자신의 기준으로 대분류 된 도서들을 세 분류하여 서가를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세속적인 기준이 있고 그 안에서 행해지는 작업들이기는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기준으로 그 분류가 되기에는 애매모호한 도서들이 그 파트 담당자의 기준에 따라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볼 때면 혼란해 지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 무렵 이후 출간되는 도서들 중 대분류가 살짝 애매모호 해지기 시작한 종류가 많아졌던 것도 한몫했다.


자기 계발 도서 같은 심리학 도서, 심리학 도서 같은 에세이류 도서, 건강 도서 같은 자기 계발 도서, 역사 분류 같은 사회 정치 도서 등등...대분류 조차 개인 기준으로 판단하면 달라질 도서들이 각 출판사의 기준에 따라 분류되어 입고된다. 갈수록 미묘하게 분류가 섞이는 느낌이 드는 건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미묘한 분류 분위기로 인하여 서점 직원들이 손님들의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손님 개인적인 생각으로 분류를 정하고 검색을 하지 않은 채 본인이 판단한 서가에서 책을 찾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서 검색을 한 뒤에 책을 다른 분류 코너에서 찾아드리면 훈수를 두는 손님도 종종 있고는 했다. 그러면 그냥 웃을 수밖에.


두 번째 서점으로 옮기면서는 입고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총판이나 직거래처에서 오는 도서의 입고를 잡는 인수처가 따로 있었다. 인수처 직원들의 판단으로 혹은 각 파트별 직원들끼리 의견 교환을 통하여 애매한 분류의 도서는 최종 선정된 위치로 들어가게 된다. 개인의 판단으로 그게 아니지 않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의 의견 역시 개인의 판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크게 반대할 건은 아니다. 단지 아주 약간의 미련이 남을 뿐이다.

서점 생활의 활력소/틀린분류 발견하기/엉뚱맞은 아이들/인공지능의 오류인가 잘못놀린 손가락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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