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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점기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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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Dec 12. 2019

익숙함 그리고 낯선

발길이 닿은 곳_서점


다른 업종에서 일을 하다 서점에서 일해보기로 결심하고 이력서를 쓰면서 잠시 예전 생각을 해 보았다.


‘서점에 혼자 가서 책을 산 게 언제부터였지?’


책을 혼자 구입하기 시작한 건 초등 4학년 때부터 였던 것 같다. 당시 집 다음으로 자주 가던 만화가게에서 업소용 만화책을 약간의 웃돈과 함께 팔아주신 사장님 덕분이었다. 집 근처 문구점에서도 일본 해적판 만화를 팔았다. 만화가게가 아닌 ‘서점’이라고 이름 붙은 가게를 가본 것은 대략 중3-고1 정도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웬만한 읽을거리의 책은 집에 다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 엄마가 구매하신 전집류가 자고 일어나면 옆에 있었다. 계몽사에서 나온 디즈니 그림동화 전집 & 세계 명작동화 전집, 웅진 세계 전래동화 전집, 한국문학 전집... 기타 등등.  집집마다 찾아다니던 방문판매원의 권유 이기도 했지만 당시로는 글씨를 빨리 배운 편이고 읽는 것에 관심을 보이던 딸을 위해 엄마가 매번 들여놓은 책들이었다. 다행히, 사주신 보람이 있어, 나는 사 오기가 무섭게 책을 다 읽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같은 전래동화나 명작동화를 또 읽고는 했다. 집에 없는 책은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서 보았다. 학교가 끝나면 늘 가던 곳이 도서관이었다. 온갖 종류의 명작, 전래동화, 신화, 어린이판 한국 명작동화, 추리소설, 설화 등등.


편식 없이 책을 대하는 버릇은 이무렵부터 시작이었던 듯하다. 나에게 안 맞는 책은 있어도 거부감이 드는 분류는 없었다. 회상을 하며 몽글 피어오르는 다독과 다분류 독서에 대한 자아도취 감은 직접 용돈을 주고 책을 사기 시작한 중3-고1 무렵으로 올라오면 점차 사그라져 들기 시작한다. 좀 더 다양한 종류의 고전 문학들을 읽을 수 있는 선택 대신에 김용이 쓴 무협지와 90년대 만화계의 르네상스를 달리던 온갖 국내 만화 잡지류,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 만화 단행본들을 주 독서 분류로 택한 나는 용돈의 80% 이상을 그 책들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다행히 부모님은 책 종류에 대하여 그리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들이었다.(정리만 잘해놓는다면)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졸업을 위해서 보아야 했던 대학생 때의 전공서적과 수험서들, 아마추어 만화 활동을 하던 시절에 접한 각종 만화 테크닉 예술 관련 책과 이야기 자료를 위한 책들, 시류에 대한 인식이 나와는 정반대인 아빠와의 대립각을 위하여 읽은 정치 사설이나 논평이 나오는 주간지와 사회현상을 다룬 각종 정치 인문 서적들, 그리고 내 인생 최대의 축복이자 변수인 딸이 태어남에 따른 각종 육아 백서 및 아동 교육 심리 관련 책들. 순수한 다분류 다독의 시기와 극한의 재미를 위한 시기를 지나 필요를 위한 독서의 시기에 읽은 책들 까지, 서점에 들어오기 전 내가 접했던 거의 모든 분류의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고 내가 그것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처음 입사했을 때의 그 감동에 가깝던 느낌은 현재 익숙함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서가를 둘러보고 있자면 두근거릴 때가 많다.


“언니, 책 분류 그리 어렵지 않으시죠. 정리하시는 것 보니 책 많이 읽어보신 것 같아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보다 직장 선배인 5살 어린 대리님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그냥 웃었다.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대분류를 정확히 나누기 모호한 책들도 많고 자기 계발서인 듯 심리 인문이라던가 인문서인 듯 과학 관련 도서인 책들이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갈수록 세분화되기도 하고 분류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하는 책들을 볼 때면 그 복잡스러움에 허리가 꼬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것은 있어도 낯선 것은 없었다.


서점 일을 하면서 내게 있어 낯선 것은 서점에 오는 사람들이었다.

오며 가며 만나는 낯선 이들 중 하나이지만 책을 대하는 마음이 나와는 다른 경우가 많음에서 느껴지는 낯섦은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그리고 현재까지도 고민거리로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잡식 대마왕/이제는 그마저도 잘 깜빡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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