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참한 사람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수영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딱 보름이 지났다.
본가에 살 때는 틈마다 근처 청소년수련관으로 자유 수영을 다니곤 했는데, 수강 등록은 한 6~7년 정도 됐을까, 여하튼 꽤 오랜만이다. 다시 수영을 시작한 건 순전히 봄바람 때문이었다.
4월의 퇴근길, 봄볕에 노릇하게 익은 바람을 느낀 순간 수영하고 싶어졌다. 정말 그냥 갑자기.
몸에 미세하게 남은 염소 냄새를 맡으며 걷고 싶어서, 걸음마다 어깨 위 젖은 머리 사이사이로 바람이 흩어져 가볍게 나부끼는 느낌이 좋아서, 그 길로 아침 수영을 등록하고 머리도 단발로 짧게 잘랐다. 무미건조한 출근 행렬 속에서 덜 마른 머리를 흔들며 합류한 날은 어쩐지 하루를 더 촉촉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수영장은 출근 동선에 있는 위치로, 인근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더 믿음이 갔다.
무턱대고 등록부터 해놓고서, 뒤늦게 이런 코시국에 수영을 해도 되나 미심쩍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문의와 우려가 많았던지 수영장 측에서는 대대적으로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있었다.
첫날, 수영장 입구에 커다랗게 적힌 ‘1m 거리 두기를 지킵시다!’ 표지판 앞에서 마스크를 낀 채 입장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던 것이 무색하게 수영장에 몸담고 있는 수강생은 9명이었다. 심지어 이 9명 중 우리 반 수강생은 등에 킥판을 달고 있는 초급자 친구와 나로 구성된, 단 2명. 그대로 나란히 초급과 중급반을 대표하게 된 우리는 레인 하나씩을 차지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절로 코시국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나는 한 6~7년 정도 전에 스노클링까지 배워둔 덕에 느긋한 속도로 영법을 교정 중인데, 레인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으니 누군가를 뒤쫓거나 쫓기지 않는, 이 속도가 참 좋다.
영법을 막 배울 때는 잘하려 애쓰다 호흡이 엉켜 물 먹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내 숨 길이에 맞춰 물살을 가른다. 잠시 숨을 멈추고 아래 흘러가는 타일들과 머리 위 지나가는 깃발을 보면서 나만의 세상을 유영한다. 그렇게 흠뻑 잠겨 있노라면 날 선 호루라기 소리가 고요를 깬다.
첫 수업부터 날 ‘우리 반의 에이스’(다시 말하지만 우리 반은 2명이다)라고 추켜세우던 강사님은 반대편에 서서 호루라기로 호통치거나 “너무 느려요! 좀 더 스피디하게~!!”를 외치며 호기를 자극하려 하지만, 이미 느리게 수영하는 법을 터득한 내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접영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접영, 그놈과의 역사는 징하다.
초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한 6~7년 정도 전에도 나는 결국 접영이라는 산을 넘지 못하고 대충 웨이브를 깔짝대다 오리발 부스트를 끼고 나비 대신 나방 정도는 되어본 역사가 있다.
이윽고 다섯 번째 수업, 물 밖에서 웨이브 연습의 수치까지 견뎌내고 드디어 만난 접영산 초입에서 나는 하릴없이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팔은 멀리 던져 물에 넣자마자 웨이브를 타고 바로 그 힘을 받은 다리로 무릎을 붙인 채 발차기를 세게 차라’는 강사님의 그럴듯한 조언은 막상 물에 들어가니 저 세상으로~
물속에서 팔-몸통-다리 순으로 제각기 분리되어 저마다 각기춤을 추는 탓에 물만 잔뜩 먹은 채 절은 날개로 공주처럼 지쳐서 레인을 걸어 돌아오는 길, 서글픈 내 몸에 꽂힌 강사님의 새파란 눈길이 시렸다*나 뭐래나~ 휴!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를 인용했지만 눈치 못 채셨다면 넘어가셔도 무방합니다 허허)
“자꾸 이쁘게 놓으려 하지 말고 그냥 툭, 과감하게 던져요!”
본능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자꾸 머리로 계산하려니 몸에 힘이 들어가서 그만큼 저항을 받아 더 힘들어진다는 거다.
“회원님은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이죠? 그간 살아오신 데이터가 몸에 그대로 보이는 거예요.”
삶은 정답이 없는 거대한 시험 같다고 종종 생각한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후회와 미련이 남을 오답이지만, 수많은 경험의 레이어를 통해 최대한 오차 범위를 줄여나가는 시험지. 매 문제마다 나름 본능적으로 과감하게 선택해왔던 것 같은데, 나는 이미 내린 오답 사이를 재고 있는 걸까?
수영을 마치고 나와 경복궁역까지 걷는 길, 이 시간이면 연어처럼 거슬러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을 본다. 아침부터 있는 힘을 모두 빼낸 나는 이 귀엽고도 소란스러운 풍경을 동력으로 하루의 힘을 채운다.
작은 등보다 훨씬 큰 가방을 메고 그보다 작은 얼굴에 마스크까지 야무지게 낀 채 잰걸음으로 걷는 아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서로의 몸까지 쳐가며 깔깔대며 걷는 아이들, 아마도 내 또래로 보이는 아빠와 손 꼭 붙잡고 대화하며 걷는 아이의 모습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본능적으로 과감하게 그냥 툭, 하고 떠올린다. 이렇게 또 정말 그냥 갑자기 말이다.
뭐지, 이게 흔히들 말하는 ‘때’가 된 걸까.
어쩌지, 아무래도 제대로 봄바람을 탄 것 같다.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