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야생곰’이 내 앞마당에 나타났다.
인기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최근 방영 회차를 보면, 이성 선택 시 고려사항 부동의 1위는 ‘성격’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성격이 ‘좋은’ 사람이란다.
이 지점에서 반려인과 의견이 갈렸는데, 그는 ‘외모가 호감인 사람 중에서’라는 전제조건이 생략되었다 말했고, 나는 성격이 ‘맞는’ 사람으로 바꿔 써야 한다고 했다.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유부녀로서,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성격이 ‘좋은’ 것과 ‘맞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밖에선 착하지만 내 가족은 복장 터지게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쩌면 존경받는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막연히 ‘좋은 성격’이 아니라,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성향에 대해 자세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연애가 이럴 때 좋은 밑거름이 된다.
결혼 전, 내가 찾는 남자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다정한 사람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
∙존경할 만한(발전적인) 사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성격적 요소다. 당시의 나는 ‘행복’하고 싶은 열망이 컸다. 그래서 스스로의 결핍에 대해 많이 탐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지닌 사람을 찾는 것부터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위 요소를 갖춘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절대 싫다고 손꼽았던 부분마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물론 무 자르듯이 딱 저 세 가지만 봤느냐,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감사하게도 반려인은 알아갈수록 매력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럼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외모도 안 봤냐고?
오목조목 흐지부지 생긴 나는 꼭 나 같이 생긴 사람을 좋아했다. 곰돌이 같이 눈이 작고 처진 선한 인상의 사람만 골라 만났다. 그러다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동그란 검은자가 ⅔ 이상 보이고, 짙은 쌍꺼풀이 있으며, 수염이 덥수룩한 풍채 좋은 사나이. 모든 이목구비가 나 여기 있다고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낼 적에는 너무 부담스러워 한 부위씩 따로 떼서 응시했던 적도 있다.
그와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면 ‘앗, 깜짝이야. 눈이 왜 이렇게 작아?’하고 새삼 놀라기 일쑤였다.
나는 ‘곰돌이푸상’을 원했을 뿐인데, 어느 날 ‘러시아산 야생곰’이 내 앞마당에 나타났다.
다정하고, 표현을 아주 잘하는데다, 존경스럽기까지 하지만 아직 길이 들지 않은 곰!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은?!
더 생각할 것 없이 곰의 등 뒤로 올라탔는데,
이게 웬걸?
통성명을 하고 나니, 빛깔부터 남다른 게 제법 늠름하고 잘생겨 보였던 거다.
연애 사실을 주변에 공개할 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예쁘냐?”
그런데 이 말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리곤 한다.
“야, 팔꿈치 잘 생겼냐?”
대체 무슨 말이냐고?
얼굴은 크게 보면 신체의 일부,
이를테면 ‘팔꿈치’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상대를 평가할 때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뜯어본다.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어깨, 가슴, 등, 허리,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목, 손가락 등 선호도에 따라 중점을 두는 부위도 제각각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쇄골, 치골, 골반 등 뼈까지 그 평가대에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팔꿈치는 어떠 한가? 살면서 한 번 눈길을 받기도 어렵다. 그 누구도 팔꿈치에게 미적 잣대를 들이댈 생각조차 않는다. 그럼에도 엄연히 신체의 주요 구성으로서 제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 낸다.
내게 얼굴은 팔꿈치 같은 것, 그저 묵묵히 제자리에서 기능하고 있는 한 사람의 구조체 중 하나인 것이다.
다른 무엇으로 판단하기 전에, 내가 그를 알아버렸다.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에는 생김새보다 동행의 보폭이나 목적지가 더 궁금한 법이다.
훗날 물어보니, 반려인 역시 그동안 나와 정반대의 외모를 가진 이성을 만나왔었다고 고백했다. 한참을 깔깔거리며 서로 놀려 댔다. 당신의 최종 선택이 바로 나라고.
그래서 굳이 불편한 자세로 애써 확인해 보지 않아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팔꿈치는 아주 잘 있다고, 걱정 감사하다고.